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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우리더러 北風을 이용하라는 겁니까?

2018-01-18 05:56

지난해 4월 강원도 강릉 하키센터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 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A 대회’ 대한민국 선수들이 북한과 경기에서 승리한 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지난해 4월 강원도 강릉 하키센터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 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A 대회’ 대한민국 선수들이 북한과 경기에서 승리한 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당사자들의 불만과 국민들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출범할 전망이다. 남북은 17일 판문점에서 차관급 실무회담을 열고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오는 20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양측 국가올림픽위원회 간 협의가 남아 있지만 사실상 단일팀은 확정됐다. 평창올림픽의 안전을 위해 북한의 참가를 목 빠지게 기다렸던 IOC였기 때문이다. 남북이 합의한 사안을 IOC가 뒤집는다면 북한이 발을 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대표팀 선수단의 불만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달래주는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다. 문 대통령은 17일 충북 진천선수촌을 방문한 자리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과 만나 단일팀 논란에 대해 언급하고, 선수단의 이해를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방문만으로 대표팀의 불만이 사그러들었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대통령의 발언이 선수단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릴 단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선수들의 희생과 양보를 강요하라는 논리기 때문이다.

이날 문 대통령은 "단일팀을 만들 수 있다면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훨씬 더 좋은 단초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단일팀의 전력이 높아지리라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팀 워크를 맞추는 데 노력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면서도 "그러나 남북이 하나의 팀을 만들어 경기하는 자체가 두고두고 역사의 명장면이 되고, 국민과 세계인이 그 모습을 보면서 감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이 전북 무주 태권도원에서 열린 ‘2017 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 개막식 종료 후 남북 태권도 시범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이 전북 무주 태권도원에서 열린 ‘2017 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 개막식 종료 후 남북 태권도 시범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그러나 선수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4년 동안 피땀을 흘리며 갈고 닦은 실력을 전 세계에 보이는 것이다. 대회 개막을 코앞에 두고 급조된 팀에서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정치적 미명 하에 억지 춘향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힘들게 올림픽 출전권을 따왔는데 왜 정부가 일방적으로 단일팀을 진행하느냐"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새러 머리 대표팀 감독도 16일 전지훈련 뒤 입국 기자회견에서 "올림픽이 임박한 시점에서 단일팀 논의는 충격적"이라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머리 감독은 " 개인적으로 조직력을 가장 중시하는데 (단일팀이 만들어지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늦게 합류하는 북한 선수들에게 자리를 뺏기는 선수들은 박탈감으로 사기가 꺾일 것"이라고 걱정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는 더 큰 문제점이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단일팀의 성사 여부를 떠나 우리 아이스하키팀에 더 많은 국민 관심을 쏟게 하고 그래서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씻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북한과 단일팀 이슈로 아이스하키 인기가 높아질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한국 정치의 단골 메뉴였던 '북풍'(北風)과 다를 바 없다. 선거철마다 숱하게 북한을 이용해서 이해 득실을 따졌던 한국 정치의 구태를 여자 아이스하키도 답습하라는 셈이다. 특히 보수 정당으로부터 그렇게 북풍의 공격을 받았던 문 대통령이기에 더 아쉬운 발언이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이 바라는 것은 단일팀에 기댄 국민 관심이 아니다. 비록 실력이 떨어져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4년 동안 흘린 땀과 눈물의 결실을 보이는 것이다. 4년 동안 다져온 호흡을 통해 정말 멋진 팀이라는 점과 아이스하키의 매력을 보여 진심으로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다. 북한 이슈로 끈 인기는 대회가 끝나면 금세 사라질 단발성 인기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민들이 이번 올림픽을 보며 지난해 국정농단 등으로 겪은 상처와 아픈 마음을 위안·치유하는 올림픽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물론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남북 관계 개선에 큰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한반도 위기를 해소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이번 단일팀 이슈로 상처와 아픔을 겪고 있다. 그들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러나 이들의 상처와 아픔은 평창올림픽을 통해 치유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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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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