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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생리 탐구 다큐 '피의 연대기', 모두가 봐야 할 이유

[노컷 인터뷰]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오희정 프로듀서 ①

2018-01-14 23:10

영화 '피의 연대기'의 오희정 프로듀서(왼쪽)와 김보람 감독이 1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영화 '피의 연대기'의 오희정 프로듀서(왼쪽)와 김보람 감독이 1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피의 연대기'(감독 김보람)의 포스터는 여느 영화와는 다르다. 인물이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해면 탐폰, 스폰지 탐폰, 일회용 탐폰, 천 생리대, 일회용 생리대, 생리컵까지 여성들이 생리할 때 쓰는 각양각색의 도구가 살포시 놓여 있다.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하다.

'피'(Blood)를 앞세운 제목과, '더 잘 피 흘리는 것'을 함께 생각해 보기 위해 만들어진 기획의도에 짐짓 겁을 먹을 수도 있지만, '피의 연대기'는 통통 튀는 밝음이 가득 담긴 영화다.

다큐멘터리 작가 출신인 김보람 감독이 공들인 영화 구조는 그 짜임새가 단단하고, 화면은 영화의 주 타깃이 되는 2030 세대들의 취향을 저격하듯 깔끔하고 세련된 모양새다. 뮤지션 김사월과 함께 좋은 음악을 들려준 김해원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OST를 듣는 맛도 있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 시네마 카페에서 '피의 연대기'를 만든 김보람 감독과 오희정 프로듀서를 만났다. 전 직장 동료에서 '피의 연대기'를 함께 작업하며 한 배에 타게 된 두 사람에게 영화의 출발과 도착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한다. (* 극중에 등장하는 인물 소개 화면에는 성을 뺀 이름과 현재 위치가 나와 있었다. 김보람 감독은 '보람/자영업자'였고 오희정 프로듀서는 '희정/프리랜서'였다)

보람 : (잠시 침묵) 이런 질문 처음 받아봐서… (웃음) 원래는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다 PD 일하다 이번에 '피의 연대기'로 처음 연출을 하게 됐다.

희정 : 저도 ('피의 연대기'가) 첫 프로듀싱 작품이다. 완전 다른 일을 하다 다큐 해외 배급 일을 1년 정도 했다. 영화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닌데, 이 작품이 너무 좋았다. (김 감독과는) 해외 배급사에서 같이 일했다.

▶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감독과 프로듀서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

희정 : 다큐멘터리는 (감독과 프로듀서 역할이) 되게 섞여 있다. (보람 씨가) 원래 PD를 했었어서 이것도 저것도 했다. 저는 보통 이렇게 설명한다. 감독이 화면 안에서 이러나는 일을 책임진다면, 프로듀서는 화면 안의 일이 발생하기 위해 스태핑(스태프를 구성하는 것)을 한다거나 섭외, 예산 관리 등을 하는 것? 근데 독립 다큐는 그냥 다 한다.

보람 : 섭외가 섞일 수밖에 없는 게, 극영화면 PD님이 배우 섭외를 주로 할 텐데 저희는 취재과정에서 섭외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니까 같이 하게 된다.

희정 : 너무 신선한 질문이다. (웃음) 아무튼 주변에서 여러 도움을 많이 받았다.

보람 : 프로듀서는 돈을 주는 쪽과 계속 커뮤니케이션하고 퀄리티를 높이기 위한 제반 작업을 하고 (작품이) 만들어진 후에는 유통 통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돈이 있어야 프로듀서가 그 역할을 전담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감독이 프로듀서까지 다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피의 연대기' (사진=KT&G 상상마당 시네마 제공)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피의 연대기' (사진=KT&G 상상마당 시네마 제공)
▶ 2015년 어느 날, 네덜란드 친구 샬롯에게 생리대 주머니를 선물한 일화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그때부터 '생리'라는 주제에 꽂혔던 건가.

보람 : 제가 여성주의에 엄청 관심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근데 '생리'라는 주제에 대해 그날 바로 생각하긴 했다. 어떤 문화권 여성들은 생리대만 쓰고 어떤 문화권은 탐폰만 쓰는데 이상하지 않아? 라고 남자친구한테 말했었다. 그러다 통통 튀는, 재미있는 단편 다큐 하나 만들면 어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희정 씨에게도 물었다. 그러고 나서 취재를 시작했는데 2015년에 해외에서 (생리 관련) 어마어마한 이슈들이 터진 걸 보고 잘하면 장편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희정 : 그날 대화가 너무 재밌었다. 인적 구성이 되게다양했는데, (생리에 대한) 한국 남성의 무지도 그렇지만 제 무지 또한 대단하다고 느꼈다. '아, 내가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내 몸과 생리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구나' 하고. 전 재밌는 기억이었는데 보람 씨는 (여기서 이어지는) 이야기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보람 씨가 제가 그날 그 자리에 없었다면 자기(보람)를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 그냥 밥 먹고 와인 마시는 자리였는데 (샬롯이) 선물 받고 나서 정말로 '이게 뭐야?' 했었다. 보통 선물을 받으면 고마워하는데 진짜 의아해 하는… (웃음)

보람 : 딱 생리대만 넣게 할 수 있는 주머니였다. 샬롯이 자기 아이폰 넣고 다니면 되겠다고 하더라. (웃음)

▶ '피의 연대기'라는 제목이 강렬하다.

희정 : 전 처음에 반대했다.

보람 : '생리 축하합니다'라는 제목을 지어서 한동안 쓰다가…

희정 : 근데 더 이상 축하하지 않았지, 우리가. (웃음)

보람 : 포스터 디자인이 그걸(제목의 강렬함) 많이 상쇄시켜준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제목이 좋다는 의견도 있다. 팸플릿과 티저를 예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역시 입소문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희정 : 영화 보시고 나면 (제목을) 다들 좋아하시는 것 같다. 다 이해가 되니까. (영화 홍보자료가 나갈 때도) 제목이랑 이미지도 같이 소개되니까 상쇄되기도 하고, 지금은 진짜 마음에 든다.

보람 : '연대'는 이중적 의미를 지녔다. 일단 시간의 연대. 역사를 너무 넣고 싶어서 그렇게 갔다. 또 여성들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고 티 나지 않는 연대를 말한다. 어느 순간 이만한 제목이 없다고 생각했다.

▶ 매거진 코스모폴리탄이 2015년을 생리의 해라고 규정했지만, 지금도 '생리'는 터부시되는 주제다. 그런데 영화에선 인터뷰이가 많이 나오더라. 섭외가 어렵진 않았나.

보람 : 지인 방사형으로 했다. (일동 폭소) 저랑 (희정) PD님, 촬영감독님이 지인을 모았다. PD님 친구들이 제일 긍정적이었다.

희정 : 가장 친한 친구들이 다 나온다. (영화 찍어야 되는데 인터뷰) 안 해 주면 망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기혼 여성들이어서 부담이 덜했던 것 같다. 트레일러 나오고 나서 '아, 이런 맥락이면 할 수 있겠다'고 하더라. 힘들긴 했다. 카메라 앞에서 생리 얘기한다는 게. 미혼 여성들은 내 미래의 남편, 혹은 미래의 시댁이 이걸 보고 불편해 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보람 : (인터뷰 연결할 때도) '기혼이니까 아마 할 거야'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느꼈다. 한국에서는 (결혼 여부가 생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구나.

'피의 연대기'에 나오는 다양한 생리 도구들 (사진=KT&G 상상마당 시네마 제공)
'피의 연대기'에 나오는 다양한 생리 도구들 (사진=KT&G 상상마당 시네마 제공)
▶ 중학교에 방문해서 생리 경험담을 듣고, 생리 도구를 직접 만져 보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어떻게 하게 된 건가.

희정 : 요새 초경을 한 10살에 시작한다고 하더라. 초경 여성(인터뷰)을 꼭 하고 싶었는데 초등학교는 허락 절차가 진짜 쉽지 않더라. 계속 미루다 편집 단계에서 '진짜 없으면 안 된다, 무조건 해 달라' 해 가지고 겨우 지인을 통해 하게 됐다. 다행히 그 반 아이들이 선생님과의 유대감도 높았고 좋은 친구들이었다. 재량활동 시간에 한 40분 정도 찍었는데 저희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많이 배웠다. 저희랑 세대가 달라서 그런지 생각도 다르더라. 재밌게 촬영했고, 햄버거 먹으면서 편집본도 같이 봤다.

▶ 영화에서 각자의 첫 생리 경험을 말하는 장면이 꽤 비중 있게 나온다. 영화를 찍고 나서 생리를 맞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줘야겠구나 하고 새롭게 깨달은 게 있나.

보람 : 스토리펀딩 댓글 달린 걸 보고 깨달은 건데 '여자가 됐다'는 말보다는, 이 말도 좋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성인이 되었다'고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여성이라는 한 카테고리에 묶는 게 아니라 성장의 한 과정으로 봐 줘서 자기는 되게 좋았다는 반응이 있었다. 초경을 엄청 떠들썩하게 축하해 놓고 나중에는 입에 담지도 못하게 하는 게 엄청 모순된 행동인 것 같다. 근데 취재해 보니 요즘 어린 친구들은 (초경을 하면) 생리 축하하는 자리를 만드는 게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하더라. 경제적으로 안정된 쪽에서는.

희정 : 맞다. 성년식처럼.

보람 : 외국에선 (초경 파티를 하고 싶어서) 생리 시작했다고 팬티에 물감을 묻힌 일화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생리가) 어떤 소비문화로만 자리 잡았지 디테일한 맥락은 아이들에게만 다 맡겨 놓은 것 같다.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성인이 된 게 아닌가 싶었다.

희정 : 사실 생리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의 부분이지 않나. 실제적인 정보가 공유돼야 한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생리대는 어떻게 접어야 하는지 등. 학교에서 일찍부터 이런 걸 얘기하면 어떨까 싶었다. (생리 관련 교육이) 가정에서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한 고등학생 인터뷰를 했을 때 집에 엄마가 없는 자기 친구는 생리 시작하고도 가족 누구에게도 말을 못했다고 하더라. 이처럼 (생리가) 개인의 영역으로만 남겨지기엔 아쉬운 부분이 있다.

▶ 생리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몸가짐을 바로 하고 뒷처리를 잘하라는 식으로 굉장히 엄격하게 통제돼 왔다. 기억에 남는 본인이나 주변인의 경험담이 있는지.

보람 : 좀 반대되는 얘긴데. 생리컵 리뷰하는 수진 씨 인터뷰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어렸을 때 다 쓴 생리대를 깜빡 하고 펼쳐놓고 나온 적이 있다고 했다. 이때 바로 다음에 화장실 쓴 사람이 아버지였다. 근데 아버지는 '너만 생리한다고 자랑하냐?' 하고 귀엽게 넘어갔다고 한다. 수진 씨한테 탐폰을 써 보라고 먼저 권하신 분도 어머니였고. 취재해 보니, 면 생리대, 탐폰, 생리컵 등 다른 방식으로 피 흘릴 방법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분들은 (생리를 받아들이는) 집안에서의 반응이 매우 긍정적이었다. 가족의 태도가 여성의 선택에도 엄청나게 영향을 끼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남자들도 (생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의 연대기'를 연출하고 출연하기도 한 김보람 감독 (사진=황진환 기자)
'피의 연대기'를 연출하고 출연하기도 한 김보람 감독 (사진=황진환 기자)
▶ 극중에 스폰지 탐폰, 해면 탐폰, 생리컵 등 아직 국내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도구들이 많이 나왔다. 영화에는 안 나왔지만 또 알게 된 게 있나.

보람 : 오프닝 시퀀스에 나오는 일회용 컵이 있다. 일반적인 생리컵이나 탐폰을 질관에 낀다고 하면 그건 치골 아래 자궁경부 공간에 끼우는 거다. 생리 중에도 삽입섹스를 할 수 있고, 이 컵은 완전히 경부를 막기 때문에 정자가 안으로 못 들어가서 피임도구로도 쓰인다고 하더라. 근데 굉장히 사용하기 힘든 도구다. 특히 뺄 때가 엄청 어렵다. (생리컵 리뷰하는) 영국 유튜버가 이걸 소개하는 영상을 올렸는데 그분도 되게 지쳐 보였다. (웃음) 이걸 쓰느니 생리컵 쓰겠다 하는 반응이었다.

▶ 김 감독은 생리컵 사용자로 나오는데 미레나, 제이디스 같은 피임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보람 : 생리 안 할 권리를 마지막 챕터로 다루려고 했는데 빠졌다. 시술을 위해서 정밀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생리전증후군이 너무 심하면 (시술보다는) 피임약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제가 생리전증후군이 엄청 심하다. 다리가 저려서 잠을 못 잘 정도다. 시술 후에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하니, '아, 이게 모든 여성들에게 해 보라고 할 만한 게 아닐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저희 영화 챕터가 15~20분인데, (피임은) 그 안에 다룰 내용은 아니라고 봤다. 낙태 등 여성 몸에 대한 수많은 문제들과 같이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희정 : 모든 사람들에게 다 답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보람 : 수술을 하면 라섹처럼 3~4일은 너무 아프다고 하더라. 근데 그것도 시간이 나야 하는 것 아니겠나. 그럴 시간이 안 났다. (웃음)

(노컷 인터뷰 ② "열정페이 NO"… 영화 '피의 연대기'가 지킨 3가지 원칙)

▶ 기자와 1:1 채팅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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