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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선 '호인'도 드라마 현장 오면 '괴물' 된다"

배우 허정도의 고발과 성찰…"집중 갈굼 당한 상처로 전문가 상담 받은 적도"

2018-01-06 06:00

지난 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tvN 드라마 '화유기' 제작현장 추락사고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지난 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tvN 드라마 '화유기' 제작현장 추락사고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현장에서 괴물로 보이던 사람이 밖에서 만나면 그렇게 호인일 수가 없는 경우를 여러 번 봤으니까요. 결국, 그토록 비인간적인 노동환경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그렇게 함부로 대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배우 허정도가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몹시 열악한 노동환경이 낳은 드라마 현장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면서 성찰에 바탕을 둔 해법을 내놨다.

허정도는 5일 밤 자신의 블로그(www.actordo.com)에 올린 '만드는 이들도 행복한 드라마를 꿈꾸며'라는 글을 통해 "뒤늦게 배우의 길을 걷기로 마음 먹고 지난 12년간, 저는 오직 앞만 보며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마지막 작품이 끝난 지난 여름, 몸과 마음이 크게 지쳐 말로만 듣던 '소진'이란 것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좀 쉬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잠정 휴업에 들어갔지만 꽤 시간이 지나도 회복은커녕 가슴이 점점 더 답답해지고 무기력해지기만 하더군요. 마음 어딘가에 오래 묵은 상처가 자리 잡았다는 신호를 감지했을 때, 저는 먼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주 오래 걷는 여행을요."

​그는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서 온전히 저의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낸 뒤 하루에 이삼십 킬로씩 쉼 없는 걸음을 걸으면서, 그 동안 지나온 어떤 지점에서 내 자신이 상처를 입어왔는지, 한 장면 한 장면이 생생히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라며 "그것은 다름 아닌, 제가 그동안 드라마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폭언의 순간들이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반말, 막말, 비아냥, 육두문자. 모두가 보는 앞에서도,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도. 감독이 배우에게, 스텝에게, 보조출연자에게. 유명배우가 무명배우에게 혹은 스텝에게, 매니저에게. 높은 스텝이 낮은 스텝에게 혹은 무명배우에게 어린 학생에게. 누가 퍼붓고 누가 당하는지는 달랐지만 방향은 항상 같았습니다. 강자가 약자에게. 오직 기준은 힘일 뿐 때로는 나이도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허정도는 "물론 드라마 현장이 늘 그런 것은 전혀 아니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에서 내려온 압박과 폭언을 자기 선에서 끝내기 위해 이 악물고 버티는 참 고마운 이들이었습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이나 영화에 비해 드라마 현장이 훨씬 폭력적이란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입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도대체 왜 그럴까. 역할이 조금씩 커지고 현장에 더 오랜 시간을 머물게 되면서 저는 명확한 원인을 보게 됩니다"라며 "그것은 다름 아닌, 정말이지 말도 안되는 우리의 노동환경이었습니다"라고 진단했다.

이하 배우 허정도의 글을 오롯이 전한다.

(사진=배우 허정도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사진=배우 허정도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 너무나 비인간적인 노동환경

드라마 현장에선 1일 노동시간이 20시간을 넘기는 것이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주 2회를 찍어내는 '생방송'에 접어들면, 하루와 하루가 제대로 된 휴식 없이 이어지는 소위 '디졸브'의 나날들이 시작되고 심지어는 일주일간 총 수면시간이 한 자리수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수면 부족의 날들이 몇 주 몇 달씩 지속되는 현장에서 화를 안내고 버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이것이 갑질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개인만을 탓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현장에서 괴물로 보이던 사람이 밖에서 만나면 그렇게 호인일 수가 없는 경우를 여러 번 봤으니까요.

결국, 그토록 비인간적인 노동환경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그렇게 함부로 대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 사고의 위험

이런 환경에서 상처를 입는 건 마음만이 아닙니다. 빨리 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자 능력이기에 안전을 확보할 충분한 시간이 없고 거기다 잠을 못 자니 집중력도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따라서 현장에선 늘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급하게 움직이다 발목을 삐고, 장비에 부딪혀 코가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지는 스태프들. 충분히 합을 맞추거나 안전장비를 착용할 시간이 없어 부상을 입고도, 소속팀의 일거리 줄어들까봐 조용히 자기 돈으로 치료 받는 무술연기자들까지. 심지어는 떨어지면 사망 아니면 중상인 달리는 레카 위에서 누구가는 조명기를 붙잡고 졸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크게 다치거나 죽거나 하는 대형사고가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 그게 바로 드라마 제작 현장의 실태인 것입니다.

◇ 실내 세트장 문제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은 피로와 시간의 압박만이 아닙니다. 실내 셋트는 종종 먼지로 가득하고 화학물질 냄새가 진동을 하기도 합니다. 외부의 빛과 소리를 차단해야 하니 환기도 잘 안됩니다.

제가 겪었던 최악의 셋트장에선, 단 하루 촬영 후 한 중년의 배우가 기관지염 진단을 받았고 한 노배우는 사흘을 앓아 누웠습니다. 배우들은 찍고 빠지기라도 하지 스태프들은 허술한 마스크 하나로 하루 종일 그곳에서 일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인들도 힘들어하던 그곳에 이제 돌이나 지났을까 싶은 아기가 마스크도 없이 보조출연자로 와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작은 아이의 뒷목에 있던 선명한 아토피 자국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실내 셋트장은 화재의 위험에도 매우 취약합니다. 주재료가 나무와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일단 불이 나면 대형화재가 되기 쉽고 여러 구조물들이 복잡하게 배치되어 있어 매번 가면서도 출구가 어딘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미 3년 전 한 드라마 셋트장에서 화재로 스태프 1명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 보호 받지 못하는 아이들

저는 정확히 두 번 보았습니다. 몇 겹을 껴입은 어른들도 덜덜 떨던 혹한의 야외촬영 날, 보조출연자로 나온 어린 소녀가 추위를 참지 못해 울고 있는 모습을. 첫 번째 아이는 그나마 운이 좋아 열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열외 사유는 '아이가 힘드니까'가 아니라 '울면 안 되는 장면에서 우니까 튄다'였습니다. 반면, 울어도 되는 장면에서 울었던 그 지질이도 운 나쁜 아이는 긴 시간 동안 연기가 아닌 진짜 눈물을 흘려야했습니다.

아이들의 눈물.

그것이 이번 여행에서 저를 가장 괴롭혔던 장면입니다.

나는 왜 그 아이를 보고만 있었을까. 아이가 울고 있다고, 촬영을 잠시 멈추고 이 아이가 몸을 좀 녹일 수 있게 해주자고, 왜 그 한마디를 못했을까. 과연 우리가 하는 일이 울고 있는 아이의 눈물을 멈추게 하는 것보다 그리도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었을까. 만약 그 아이가 감독의 아이였다면, 혹은 지체 높으신 누군가의 딸이었다면 우린 그 아일 그렇게 사시나무 떨 듯 떨게 놔두었을까.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끄럽고 또 미안했습니다.

한동안 저를 무기력하게 만든, 마음 속 깊은 상처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 모든 아픔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침묵했다는 것.

2014년 4월 16일.

저는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흘 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한동안 여러​ ​뒷수습을 하느라 그 일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 날의 일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세월호는 제게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길 내내 그 배는 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너는 이제 어른이잖아. 어른은, 지금 세상의 모습에 대해서 남 탓만 하고 있어서는 안되는 거잖아.'

집으로 돌아온 저는 우리 현장의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침묵의 관성과 그동안 누렸던 것을 잃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틈만 나면 저를 붙잡았습니다.

그러던 지난 12월 2일, 제주시청 앞에선 현장실습을 나갔다 유명을 달리한 고 이민호군 추모집회가 열렸고 때마침 제주도에 와 있던 저는 어느 새 그 작은 광장 한 구석에 서 있었습니다. '세상을 이렇게 만든 건 저 아이들이 아닌데. 자신의 탐욕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쁜 짓을 한 사람도,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 소극적으로 눈을 감은 사람도 저 아이들이 아닌데….' 그저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그 미안함으로 인해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를 뒤지고, 표준계약서와 법령을 찾아보고, 문체부 담당자와 관련 법안을 발의한 의원실과도 통화하고, 변호사에게 자문도 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국민청원으로 방향을 잡고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한창 글을 마무리하던 중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깁니다. 정부가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 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한 겁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스태프와 배우가 실태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단 얘길 듣고는 청원 준비를 계속 했었는데… 대통령께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후보 시절의 약속을 그대로 지키셨더군요. 개인적으론 살짝 김이 새기도 했지만 깊은 고마움과 희망을 안고 쓰던 글을 접었습니다.

그런데 정부 발표가 있고 나흘이 지난 12월 23일, 한 드라마 셋트장에서 작업하던 스태프가 구조물에서 떨어져 하반신 마비라는 끔찍한 부상을 당합니다. 그는 올 해 각각 중2와 고3이 되는 두 아이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연말이면 늘 있는 방송사들의 연기대상 시상식을 보는 제 마음은 그리 편치가 않았습니다.

'배우들에겐 수 십개의 상을 만들어 노고를 치하하면서 왜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은 잔치에 초대받지 못하는 걸까. 그동안 스태프들이 과로로 교통사고로 화재로 죽고 심지어는 모욕감과 자괴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에도, 우리는 왜 단 한 번도 잔치를 멈추고, 아니 잔치 도중에라도 함께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했을까. 만약 배우가 죽거나 하반신마비가 됐다면 과연 우리는 지금과 같았을까.'

저는 컴퓨터를 켜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이 현장에 발 딛고 있는 한 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아니 이제는 더 이상 그 목소리를 누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이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엄두가 안났습니다. 그렇게, 저는 이 글을 밖으로 내어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제가 지켜본 것을 바탕으로 정부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 글을 맺고자 합니다.

1. 표준계약서 전면 의무화

정부는 표준계약서 적용 확대를 위한 여러 정책들을 내놨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도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왜 전면 의무화에 대한 이야기는 빠졌는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대화와 준비가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종국에는 '공적 지원이나 투자를 받는 곳'을 넘어 모든 현장에서 표준계약서가 적용되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표준계약서는 대단한 특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이기 때문입니다.

전면 의무화는 위헌소지가 있다는 얘길 담당자로부터 듣긴 했는데 저는 법을 잘 몰라서 그런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 위헌일 수 있다는 게 잘 이해가 안됩니다.

최저임금이 선택사항이 아니듯, 표준계약서도 마찬가집니다. 만약 전면 의무화가 정말 문제가 있다면 법을 새로 만들든 고치든 다른 방법이라도 찾아야 합니다. 인간답게 살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니까요.

2. 기존 표준계약서의 개정

1) 휴식시간

지금의 표준계약서엔 한 회차 촬영이 끝나고 다음 촬영이 시작되기까지 최소 몇 시간을 쉬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1일 최대 노동시간인 18시간을 일하고 1시간 쉬고 다시 18시간 일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져 노동시간의 제한이 별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영화분야 표준계약서의 경우 촬영 종료 후 10시간의 휴식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당장 그만큼은 힘들더라도 최소한의 회복을 할 수 있는 휴식시간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2) 모호한 표현들

구체적인 문구 없이 "상호 협의한다"는 식의 조항이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제정 당시 합의가 잘 안된 부분을 그렇게 뒀다고 하는데, 드라마 현장에선 미리 약속된 것조차도 을이 갑에게 요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숫자와 문구가 아니면 그 울타리는 없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3. 미성년자 보호대책 수립

현장의 아이들을 위한 울타리가 전혀 없는 것인지, 답답한 마음에 이러저리 찾아보니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여기 보면 15세 이상 청소년은 연장근로 포함 주 46시간 이상 일할 수 없고, 15세 미만의 경우 주 35시간 이상 일할 수 없으며, 다음날이 휴일이 아닌 이상 밤 10시 이후엔 아예 노동 자체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 법이 지켜지는지를 떠나서 과연 알고 있는 현장이 있기는 한지 궁금합니다.

또 아이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는 조치를 계약에 포함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표준계약서에조차 그런 구체적인 조항이 전혀 없습니다. 법이든 계약서든 아이들의 노동, 학습, 휴식시간 및 특정 기온 이하 혹은 이상일 경우 어린 아이들의 야외촬영을 금지하는 식의 조항을 구체적인 숫자로 명기해야 합니다.

​현장의 아이들은 어른들과 똑 같이 밤을 새고 똑같이 굶고 똑같이 화장실에 못 갑니다. 더 슬픈 것은 '참고 버텨야 다음 기회가 온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어 웬만해선 힘든 티를 안 낸다는 점입니다. 그나마 배우들은 매니저나 보호자가 옆에서 챙겨주기라도 하지만, 보조출연하는 아이들의 경우 보호자 또한 같은 현장에 보조출연자로 일하는 경우가 많고, 따로 인솔자가 있다 해도 현장에서 어떤 요구를 할 분위기가 전혀 못됩니다.

따라서 현재 공연계에서 확대되고 있는 아역 전담 스태프(아이들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의 고용을 의무화하거나 아니면 아예 정부기관에서 그런 담당자를 1명씩 파견하는 것을 제안해봅니다. 덧붙여, 어느 셋트장에서든 아이들과 노약자도 건강하게 촬영할 수 있고 화재가 났을 경우 누구나 빠르게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 또한 필요합니다.

◇ "보는 사람뿐 아니라 만드는 이들도 행복한 '우리 모두의 드라마' 되길 꿈꾸며"

이상 제가 드라마 현장에서 느낀 문제점들 중 시급한 것들을 추려봤습니다. 그나마 저는 배우에 남자에 어른에 경력도 좀 쌓여 비교적 나은 대우를 받고 있고 따라서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이 더 많을 것입니다. 부디 정부에서는 더 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장에서든 설문을 통해서든 꼭 듣고 반영해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기 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이 글이 어떤 개인이나 특정 작품을 공격하고자 쓴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보다 나은 현장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지만, 누군가에게 집중 갈굼을 당한 상처로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해결책은 개인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우리의 선한 마음을 지켜주고 폭력적인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시스템, 보다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함께 일구어가는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바라는 모든 변화에는 비용이 들고 누군가의 몫이 커지면 다른 누군가의 몫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드라마는 작품의 첫 틀을 짤 때, 가장 힘이 센 사람들의 몫을 먼저 정하고 그 나머지를 힘의 순위에 따라 나누어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 방식에서 벗어나 가장 힘 없는 사람들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울타리를 먼저 만든 다음, 그 나머지를 힘 있고 기여도가 큰 사람들이 나누는 것. 그것이 드라마 현장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대한민국을 꿈꾸는 우리 모두가 걸어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도 해봅니다.

오랜 시간 TV 드라마는 저를 포함한 많은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눈물과 마음 졸임을 선사해 왔습니다. 좋아하는 드라마가 생기면 저 또한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친구들과 그 이야기 하는 재미로 몇 달을 지냅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보는 마음이 마냥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뒷면에 있는 아픔들을 조금이나마 보고 들었으니까요. 제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아픔이 더 많이 있을 테니까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 현장으로 첫 발을 디디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발 그 누구도,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노력해서 얻은 열매는 골고루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새해에는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만드는 이들도 행복한 '우리 모두의 드라마'가 되길 꿈꾸며, 오랜 시간 마음에 품어왔던 이야기를 맺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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