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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진선규들’의 꿈…유해진도 끝내 울컥

SBS 스페셜 ‘스타로부터 한 발자국’

2017-12-18 19:27

이름 모를 ‘진선규들’의 꿈…유해진도 끝내 울컥
제대로 된 이름이 없다. 대본에는 그저 덤프1, 어깨2와 같은 숫자뿐.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있었는지도 모른다. 엔딩 크레디트에서는 바짝 집중해야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단역배우’이다.

18일 방송한 SBS스페셜 ‘스타로부터 한 발자국’은 단역배우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아주 짧은 대사를 하거나 한 장면만 나오는 사람들을 ‘단역배우’라 부른다.

영화 <부산행>에서 좀비가 되어 공유와 격투 신을 벌이는 대전역 좀비1, <범죄도시>에서 윤계상의 부하로 나와 상인들을 괴롭히던 흑룡파6 등 단역배우들은 스타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열연한다.

단 한 장면을 위해 반나절을 추위에 떨며 대기하고, 한 마디 대사를 며칠간 연습하는 이들의 치열한 삶을 방송은 잔잔하게 풀어냈다.

특히 배우 유해진이 내레이션을 맡아 그 울림이 더 깊었다. 유해진 역시 단역배우로 시작해 지금의 스타로 자리매김한 인물. 그는 20년 전인 1997년 영화 <블랙잭>에서 덤프1이라는 배역으로 데뷔했다.

(방송화면 캡처)
(방송화면 캡처)
방송에는 수많은 단역배우들이 출연했다. 영화 등에서 짧은 대사나 행동이었음에도 인상적이어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이들도 몇몇 등장했다.

이들 대다수는 연기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단기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언제 영화나 드라마 쪽 일이 들어올지 모르기에 단기로 일했다.

이름 모를 ‘진선규들’의 꿈…유해진도 끝내 울컥
이름 모를 ‘진선규들’의 꿈…유해진도 끝내 울컥
새벽부터 저녁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난 뒤에도 쉬지 못하고 연기 연습을 하거나 프로필을 보내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프로필은 이메일로도 보내고, 심지어 여러 제작사를 돌며 직접 전하는 일명 ‘프로필 투어’로도 했다.

프로필을 전하러 가도 제작사 사람을 만나 직접 전달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문 앞 박스에 프로필을 두고 와야 했다. 그 박스에는 이미 수십여 사람들의 프로필이 쌓여 있다. ‘프로필 투어’ 중 다른 단역 배우들과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는 것도 다반사였다.

“영화 한 편을 하려고 캐스팅 공고를 하게 되면 프로필만 한 2000장 정도 사무실에 와요. 인물 조감독이 400~500명 정도로 추리죠. 영화마다 다르긴 한데 단역은 20~30명 캐스팅하죠.”(이준익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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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이 됐다 해도, 단역배우의 촬영과정은 녹록치 않다. 이날 방송에서는 감독의 집에서 촬영하는 상황이 방송에 등장했는데, 집주인이 나타나 ‘소란스럽게, 뭘 하느냐’는 항의를 받는 장면도 있었다. 밖에서 촬영하기에는 제작비가 많이 부족한 탓이다.

이름 모를 ‘진선규들’의 꿈…유해진도 끝내 울컥
또 제작현장에서 카메라로 찍기 전 스마트폰으로 배우들을 먼저 잡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 역시 비용을 아끼기 위한 방편이었다. 현장에서 쓸 카메라를 가져와 찍기에는 예산이 많이 들어, 스마트폰 어플을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이름 모를 ‘진선규들’의 꿈…유해진도 끝내 울컥
방송에 출연한 단역배우들은 ‘주조연이 아니어도 좋다. 단역이라도 할 수 있다면’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연기는 계속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인지도가 있어야 해요. 많이 출연해야 하고,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단역이라도 가리지 않고 하다보면 그런 기회가 올거야 라는 믿음.” - 조미녀(26) / ‘낭만닥터 김사부’ 거대병원 간호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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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과는 달리 단역으로 자주 등장하는 배우 백인권(34) 씨의 일화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영화 <부산행>에서 대전역에서 공유를 덮친 ‘대전역 좀비’를 맡았다. 영화 <밀정>에서는 하시모토 역의 엄태구에게 살짝 한 대 맞는 박웅이라는 이름의 정보원 역을 맡았다.

그는 이날 지방 촬영현장 숙소에서 다른 단역배우들과 취침 전 맥주 한 캔을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 주제는 역시 오디션이었다. 그러던 중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진선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대부분 울컥했다고 고백했다.

이름 모를 ‘진선규들’의 꿈…유해진도 끝내 울컥
“자기가 진짜 노력한 결실을 이제 맺었다는 느낌이 수상 소감할 때 확 나더라니까. 단역배우들에 대한 노고를 그 멘트 하나로 다 치환시켜버리는 느낌.” (이환진(36))
“옛날에는 마냥 신기했어. 저 사람들은 뭘 했기에 저 자리까지 올라가서 상을 받을까 했는데, 이해가 되는 거지. 저 사람들은 그만큼의 노력을 했으니까. 한편으로는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오기와 의욕이 생기는.”(백인권)

그러면서 단역에서 시작해 스타의 자리에 올라선 상도 수상한 배우 라미란, 조진웅, 황정민, 유해진의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이어 제작진은 오디션을 보러 온 단역 배우들에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미래에 어떤 상을 받았다고 가정하고 수상소감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름 모를 ‘진선규들’의 꿈…유해진도 끝내 울컥
그러자 배우들은 연기에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눈가가 촉촉해지고, 목소리가 잠겼다. 그 생각만 해도 울컥해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유해진 역시 눈시울이 붉어지고, 내레이션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준익 감독은 “그분(단역배우)들의 어떤 삶의 가치나 직업적 의지에 대해서 정말 함부로 말할 수 없다. 24시간 단 1초 그것만을 위해서만 사는 분들이다”며, “단역배우만 그럴까.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자신을 증명해내기 위한 그 과정에서는 다 똑같지 않을까”라고 노력하는 이들을 낮게 평가하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유해진 역시 이 마지막 내래이션으로 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모든 삶은 작고도 큽니다. 누구나 각자의 인생에서 주인공이죠. 꿈과 용기를 가졌다면 주저 말고 무대에 오르십시오. 결말은 해피엔딩 아닐까요.”

CBS노컷뉴스 유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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