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강철비' 정우성, "분단 현실, 지도자들에 이용당해" (인터뷰 ①)

2017-12-15 06:00

영화 '강철비'에서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으로 피신한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 (사진=NEW 제공)
영화 '강철비'에서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으로 피신한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 (사진=NEW 제공)
44세의 나이. 웬만한 중년 남성 배우들이라면 이미 확고한 캐릭터성을 밀고 나갈 시기다. 그러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우성에게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우성은 여전히 나이를 불문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역할들을 자연스럽게 입는다.

영화 '강철비'의 최정예요원 엄철우 역 또한 그렇다. 외양은 비록 날카롭고 메말랐지만 속은 가족들을 향한 걱정으로 가득찬 인물이다. 겉모습부터 성격까지 전혀 정반대인 외교안보수석 대행 곽철우(곽도원 분)와는 인간적이면서도 따뜻한 케미스트리를 펼쳐 나간다. 냉철한 북한 최정예요원 캐릭터들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인간다운 모습이 가득한 엄철우 캐릭터는 상당히 다른 측면이 있다.

정우성 말대로 그것은 정형화된 표현이 아니라 '날것'의 어떤 순수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게 바로 정우성이 영화에 뛰어드는 본질적인 마음가짐이다.

다음은 정우성과 나눈 일문일답.

▶ 곽도원과의 연기 호흡이 굉장히 눈길을 끌더라. 코믹한 장면이든 진지한 장면이든 두 사람 '케미'가 좋은 게 눈에 보였는데.

- 곽도원과 연기를 할 때 리허설을 거의 하지 않는다. 연기를 맞추고 들어가지 않는거다. 밀폐된 공간 안에서 서로 어떤 기운과 공기만을 느끼면서 받아치는 리액션들이 고스란히 담겨서 관객들에게 그 온도까지 전달된 듯한 느낌이 든다.

▶ 양우석 감독이 엄철우 역에 본인을 캐스팅한 이유가 '순수한 모습 때문'이라고 했는데 어떤 측면을 보고 그렇게 느꼈다고 생각하나.

- 철이 안 들어서 그렇다. 청년이고 싶은 거지. 물론 자기 나이에 맞는 심성과 태도를
갖는 것도 중요한데 어떤 관습적인 모습을 쫓아갈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영화 '강철비' 스틸컷. (사진=NEW 제공)
영화 '강철비' 스틸컷. (사진=NEW 제공)
▶ 연기하는 내내 평양 사투리를 쓰는 게 힘들었을 것 같다.

- 아무래도 영화 안으로 관객들을 끌고 들어오느냐, 못 끌고 들어오느냐의 게임이라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잘한다, 못한다는 평가보다는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중요할 것 같았다. 어울리기 위해서는 일단 잘해야됐다. 새터민 선생님이 사투리를 가르쳐주셨는데 여자이다보니 남자처럼 흉내내면서 가르쳐 주시는 거였다. 실제 평양 남자의 말투를 듣고 싶어서 다큐를 찾아서 계속 봤었다. 관객들이 잘 알아듣게 풀어서 이야기하자는 현실적 타협의 문제가 있었는데 최대한 본질에 가깝게 가기로 결정했었다.

▶ 곽도원이 그러더라. 정말 '죽을 것 같이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그렇게 영화에 임하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 그렇게 해도 잘한다는 이야기 듣기 힘들다. 솔선수범이라고 해야 하나. 선배가 대충하면 현장 분위기 전체가 다 대충하는 분위기가 된다. 누군가가 거기에서 열정을 보여줄 때 현장 전체에 다 전이가 되는 것 같다.

▶ 유독 곽도원에 대한 애정을 많이 표현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더라. '아수라' 때는 대립하는 역할로 만났고 이번에는 '버디 무비'다운 호흡을 보여줬는데 본인을 사로잡은 곽도원의 매력이 있나.

- '아수라'가 '강철비' 하모니의 초석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 영화를 통해서 인간적인 곽도원을 많이 알게 됐다. 그 이후로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또 이 작품을 만나서 그 때 얻었던 인간적 신뢰나 호감이 '강철비'에서 빛을 발하게 됐던 것 같다. (곽)도원이는 귀엽다. 또 날 사랑해주고. 도원이도 '날것'인 표현을 좋아하고 나도 내 나름대로의 '날것'인 표현이 있는데 도원이는 그걸 잘 캐치한다. 초감각적인, 심리적 케미스트리가 있다. 주어진 대사를 본심처럼 끄집어낼 수 있는 힘이 있다. 도원이는 인간이 자연스럽고 자유로워서 연기도 그렇다.

영화 '강철비'에서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으로 피신한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 (사진=NEW 제공)
영화 '강철비'에서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으로 피신한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 (사진=NEW 제공)
▶ 양우석 감독의 전작이 천만 관객을 모았던 '변호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작업에 더욱 기대하는 바가 있었는지?

- 감독 전작에 대한 기대를 다음 작에 얹으면 온전한 그 작품이 안 된다. 시나리오 속 세계관을 보고 선택을 해야지 그런 유명세에 따른 선택은 어리석은 선택일 수 있다. 그러다보면 천만 공식에 맞추게 된다. 그런데 또 그런 공식은 없지 않나. 양우석 감독과 작업하면서 느낀 건 준비가 철저하고 뚝심이 대단한, 좋은 화자라는 것이었다. 또 시대에 필요한 담론을 무겁지 않게 던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데이터와 공부를 통해 이야기를 써냈기 때문에 그런 것에 기인한 확신이 있었다. 그러니 기자들에게 영화를 보여줄 때도 불확실함에 시달리지 않고, 담담하면서도 뚝심있게 의견을 경청하고 그럴 수 있는 것 같다.

▶ '강철비'가 관객들에게 던질 수 있는 시대적 담론을 좀 더 구체화시켜서 풀어낸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 어느 순간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태도가 무관심해졌다. 이성적으로 다가가야 하는 대상이지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이 이제 거의 없지 않나. 뉴스에서 나온 북의 모습들을 감정적으로 멀리, 마치 무슨 드라마를 보듯이 볼 때도 있다. 나는 '강철비'가 그런 우리의 자세가 무엇인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담론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 실제 북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나 감정적 거리가 영화 촬영 전과 후에 달라진 것이 있는지 말해달라.

- 우리는 같은 민족이니까 언젠가 통일이 돼야 한다는 생각은 했었다. 저긴 체제가
왜 저러지, 북한 사람들 안타깝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지만 애정을 갖고 깊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작업을 통해 북한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분단 체제를 이용하는 지도자들에 의해 그 심각성과 진지함을 외면하는 시대를 살았다.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www.nocut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쇼!이슈

마니아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