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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적 안했다… 김기덕 감독, 무명배우에 왜 이렇게까지 하나"

[일문일답] 폭행 피해 배우 A씨 "고소에만 4년 걸려, 수치심과 억울함 속 방치"

2017-12-14 12:48

(사진=자료사진)
(사진=자료사진)
"저는 오랜 고민 끝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고 지금도 무척 떨립니다. 저는 4년 만에 나타나 고소한 것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고소를 한 번 하는 데에 4년이나 걸린 사건입니다."

이른바 '김기덕 감독의 폭행 사건' 피해자인 여배우 A 씨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14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열린 '영화감독 김기덕에 대한 검찰의 약식기소 및 불기소 처분 규탄 기자회견'에서, A 씨는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한편 취재진의 질문에 답했다.

A 씨는 지난 2013년 영화 '뫼비우스' 촬영 당시 다른 배우들과 제작진이 보는 앞에서 뺨을 2~3차례 맞았고, 대본에 없었고 모형 성기가 준비돼 있었음에도 '남자배우의 성기를 잡는 씬' 연기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17. 8. 29. 김기덕 감독 VS A 배우, 폭행·베드신·하차 쟁점 '셋')

그러나 검찰은 김 감독에게 '강요', '강제추행치상 및 명예훼손' 부분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폭행' 혐의만을 인정해 벌금 5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A 씨와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불기소 처분에 항고할 예정이다.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17. 12. 7. '여배우 폭행' 김기덕 감독, 벌금 500만원 약식기소)

A 씨는 4년 만에 돌연 과거의 피해를 고백한 것이 아니라, 여러 어려움 때문에 사건을 공론화하고 실제 절차를 밟는 데에 4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또한, 폭행을 '연기지도'라고 해명하고, 'A 씨가 촬영현장을 무단이탈했다'고 주장한 김 감독에게 "힘없는 무명의 배우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 반문했다.

A 씨 설명에 따르면 A 씨는 사건 발생 직후 2개월 동안 집 밖에도 못 나갈 정도로 심한 공포에 시달렸다. 그 해 6월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인권지원센터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각 분야 전문가들을 만났으나 '무고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좀처럼 사건 해결이 진행되지 않았다.

A 씨는 무엇보다 '영화계의 도움'을 받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저는 강한 의지를 보이며 영화계 지인들을 찾아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세계적인 감독을 상대로 고소하는 것이 승산 있겠냐', '화는 나겠지만 그냥 잊으라'는 조언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행과 성폭력 기사를 접할 때마다 당시의 사건이 떠올라 고통을 겪는다. 누가 제 앞에서 손만 올려도 충격이 떠올라 참을 수 없는 불쾌감에 시달린다. 제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판정을 받은 건 2017년으로 사건 발생 4년 후"라며 "저는 지난 4년을 수치심과 억울함 속에 방치된 채 보냈다"고 전했다.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영화감독 김기덕에 대한 검찰의 약식기소 및 불기소 처분 규탄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영화감독 김기덕에 대한 검찰의 약식기소 및 불기소 처분 규탄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A 씨는 김 감독 측이 언론에 배포한 공식입장도 정면 반박했다. 김 감독 측은 A 씨가 일방적으로 출연을 포기하고 연락을 끊었다, 3일차 촬영 당시 오전 10시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자 PD가 집 근처까지 와 수차례 현장에 나올 것을 요청했으나 끝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 바 있다.

이에 A 씨는 당시 문제제기했을 때 김 감독이 시나리오에 없던 것을 찍게 해서 미안하다, 앞으로는 임의로 만들어 찍지 않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내 김기덕 필름 관계자에게 '감독님이 저에게 화가 났다'며 이미 찍은 촬영분만 쓰거나 촬영을 접을 수밖에 없다며 택일할 것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저는 김 감독과 의견 조율에 최선을 다했고 결과적으로 저와의 촬영 중단을 결정한 건 김 감독입니다. 저는 무책임하게 촬영 현장을 무단이탈하지 않았다. 저로 인해 스태프들이 잔금을 못 받았을까봐 걱정돼 확인하는 녹취록도 있는데 이게 어떻게 잠적한 건가. 힘없는 무명의 배우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일을 덮으려고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냐. 사건 공론화된 후 저는 많은 악플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A 씨는 또한 자신보다 15년 이상 데뷔가 늦은 또 다른 여배우가 '악플'로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한 달 가까이 실명과 신상을 인터넷에 유포하고, 언론에 신상을 제보하자는 협박 댓글을 단 네티즌이 알고 보니 후배 배우였다는 설명이다.

A 씨는 "그분은 김 감독과 인연이 있는 분이었다. 정말 비참했다. 그들에 비하면 저는 명성도 권력도 아무 힘도 없는 사회적 약자이며, 사건 후유증으로 배우 일도 중단했다. 같은 여자 연기자로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제가 영화계에 힘 있는 유명배우였어도 그런 수모를 줄 수 있는지 그 배우에게 묻고 싶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다음은 호소문 발표 후 이어진 취재진과 A 씨의 일문일답.

▶ 이번 검찰 구형 소식 접하셨을 때 심정은.

충격적이고 두렵다. 명예훼손 강요 등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했는데 저는 좀 이해가 안 된다. 검찰에서 그냥 외면하실까봐 많이 두렵다.

▶ 고소장 접수 후 주변의 압력, 불이익이 있었나.

김기덕 필름 측은 공식발표와 비공식 SNS를 통해서도 제가 무단이탈했다고 밝혔다. 영화 현장에서 제 분량의 70%를 찍은 주연배우가 현장에 안 나가는 건 그 영화가 중단되고, 소위 엎어진다고 했을 때나 있는 일이다. 손해가 막심한데 그런 배우를 누가 쓰겠나. 제가 감독이고 제작자라도 쓸 수 없다. 불안해서 어떻게 쓰나. 톱스타래도 그런 배우는 다음 영화에 캐스팅되기 어려운데 ('무단이탈' 발표를 하면서) 저 같은 배우는 이쪽에서 발도 못 붙이게 만든 거다. 제가 나올 수밖에 없고 이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렇다. 저는 고통받고 있다. 외상후 트라우마로 저는 괴로운데 (김 감독 측이) 아예 이쪽에서 밥벌이조차 못하게 했다. 무단이탈이라는 말을 썼을 때 배우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김 감독이 정말 몰랐을까. 지금도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

김기덕 폭행 사건 피해자 A 씨가 가림막 뒤에서 심경을 밝히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김기덕 폭행 사건 피해자 A 씨가 가림막 뒤에서 심경을 밝히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공포스럽다, 무섭다, 떨린다 등의 표현을 많이 했다. 촬영현장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포스러웠다, 저는. 감독님은 첫 촬영 때부터 제게 좋은 감정이 아니었다. 저도 그걸 느끼고 있었고 현장에서 저는 폭행을 당했다. 감독님은 그걸 연기지도라고 연기지도로 사람을 때렸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냥 구타당한 거다 '감정 잡게 할 거야' 하시더니 갑자기 얼굴 세 대 때렸다. 두 대가 너무 세서 세 번째는 제가 본능적으로 피해서 손가락이 스쳤다. 그러고 나서 바로 '액션!' 외쳐서 연기를 시켰다. 저는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구도 그 상황에서 문제제기하거나 제재하면서 저 도와주시는 분이 하나도 안 계셨고 모두들 저와 눈을 피했다. 저는 매니저도 없었고 너무 외로웠다.

대본에도 없는 남자배우의 성기를 잡게 하는 등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요구했다. 저는 유명하지도 않고 무명의 배우지만, 20년 촬영현장 경험이 있는 배우다. 저도 연기지도 배운 적 있다. 전문적인 연기지도 하는 분을 액팅 디렉터, 액팅 코치라고 하고 그분들이 현장에 나오기도 한다. 유명 배우들도 그런 분들 찾아가 자기 연기 업그레이드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 보는데 배우 얼굴을 후려치는 건 폭력이지 그게 어떻게 연기지도가 되나.

저는 너무나 무서웠다. 공포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은 돈주고 산 짐승조차도 주인이 때리면 동물보호협회에서 와서 그 동물을 못 키우게 하고 신고하게 하는 세상이다. 왜 저는 사람인데 김기덕 감독에게 무슨 잘못을 했길래 사람들 보는 앞에서 얻어맞고, 비겁하게 연기지도라는 말을 들었나. 기자분들이 그분들(액팅 디렉터, 액팅 코치)들께 (김 감독의 폭행 같은 행동이) 제대로 된 연기지도였는지 자신의 감정표현이었는지 알아봐주시기 바란다.

▶ 사건 공론화 이후 김기덕 감독이 어떤 방식으로든 연락 취해온 게 있나.

없다. 전혀 없다.

▶ 사건을 공론화시키고 김 감독 고소한 후, 앞으로 나선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지. 아니면 나설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현재까지는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건이 최종적으로 끝나야… 제 인생에서 이 사건이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 죽을 때까지 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지 그건 저도 알 수 없다. 언론이 도와주셔서 제가 제 인생에 이 사건이 의미있는 기억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리고 나설 가치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 미국 등 해외에서는 여러 여배우들이 '미투 캠페인'과 같이 성폭력 사실을 공적으로 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왜 한국에서는 여배우들이 이렇게 나서지 못한다고 보는지.

미투 캠페인에는 세계적인 배우들이 굉장히 많이 앞장섰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저처럼 힘없는 배우가 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고, 이걸 계기로 해서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길 바라고 용기 낼 수 있는 시스템이나 준비가 잘 갖춰지길 바란다. 저는 2013년도에 사건 진행하려고 강한 의지 가지고 시작했고 여성단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검찰 결과도 아시겠지만 (영화계 내 성폭력은) 영화계의 전문적인 특수한 영역의 문제…(로 여겨진다) 영화계 분들이 전문성 가지고 성폭력 사건에 대해 밝히는 데 의견을 내 주셔야지 가능한 사건이다. 앞으로 전문적인 시스템 갖춰주시기 바란다. 미투 캠페인이 한국에서도 벌어지길 바란다.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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