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통한의 패배?' 진짜 승자는 日이 아니라 SUN이다

2017-11-17 06:00

'아버지, 보고 계신가요?' 한국 야구 대표팀 이정후가 16일 일본과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2017' 일본과 개막전에서 2타점 2루타를 때려낸 뒤 동료들을 향해 손가락을 펴며 기뻐하고 있다.(도쿄돔=KBO)
'아버지, 보고 계신가요?' 한국 야구 대표팀 이정후가 16일 일본과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2017' 일본과 개막전에서 2타점 2루타를 때려낸 뒤 동료들을 향해 손가락을 펴며 기뻐하고 있다.(도쿄돔=KBO)
정말 아쉬웠다. 다 이긴 경기를 아깝게 내줬다. 숙명의 라이벌 대결임을 감안하면 깊은 한숨이 나올 만한 승부였다.

하지만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다. 객관적으로 열세였던 전력 차를 고려하면 상대를 패배 직전까지 몰고 가고 연장 접전을 펼친 것만 해도 박수를 받을 만했다. 한번의 패배는 향후 더 큰 경기에서 승리를 위한 밑거름이 되기 충분했다.

선동열 감독이 이끄는 야구 대표팀이 16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 2017' 일본과 개막전에서 연장 10회 끝에 7-8 석패를 안았다. 9회초까지 4-3, 10회초까지 7-4로 앞선 상황을 생각하면 진한 아쉬움이 남는 패배였다.

무엇보다 필승 계투조의 마무리가 아쉬웠다. 대표팀은 선취점을 내줬지만 4회 김하성의 솔로 홈런, 이정후의 2타점 2루타 등으로 역전해 성공하며 승리를 눈앞에 뒀다. 그러나 9회 불펜진의 연속 볼넷 3개로 4-4 동점을 허용한 데 이어 7-4로 앞선 10회말 일본에 동점 3점포를 맞더니 끝내기 안타를 맞았다.

패배는 아쉽지만 성과는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본과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물론 이겼다면 그 효과는 더했겠지만 1점 차, 그것도 연장 패배는 어린 선수들에게는 더욱 값진 경험이 될 수 있다.

'난 이제 빅 게임 피처' 한국 야구 대표팀 장현식이 16일 일본과 APBC 2017 개막전 선발로 나와 역투를 펼치고 있다.(도쿄돔=KBO)
'난 이제 빅 게임 피처' 한국 야구 대표팀 장현식이 16일 일본과 APBC 2017 개막전 선발로 나와 역투를 펼치고 있다.(도쿄돔=KBO)
당초 APBC는 24세 이하 또는 입단 3년 이하 프로 선수가 나서는 대회다. 다만 겅력과 나이에 관계 없이 선발하는 3명의 와일드카드(WC)가 있었다. 하지만 대표팀은 일본과 달리 WC를 쓰지 않았다.

선 감독은 선수 선발에 앞서 고민이 있었다. WC를 뽑을지 여부였다. 전력을 생각하자면 취약한 포지션에 KBO 리그 정상급 선수를 선발해야 했다. 그러나 미래를 보자면 젊은 선수를 1명이라도 더 보내는 게 나았다.

선 감독은 "2020년 도쿄올림픽이 도쿄돔에서 열리는데 이 구장을 경험한 젊은 선수가 거의 없더라"면서 "그래서 차라리 WC보다는 젊은 선수를 데려가 도쿄돔을 겪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결국 선 감독은 이번 대회에 베테랑들을 데려가지 않았다. 죄다 24살 이하, 혹은 3년 차 이하의 젊은 선수들로 엔트리를 채웠다.

사실 선 감독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일본의 영향도 컸다. 주니치에서 '나고야의 태양'으로 불릴 만큼 일본 사정이 밝은 선 감독은 "일본이 WC를 뽑지 않는다고 하더라"면서 "그러면 더욱 우리가 WC를 데려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WC가 없는 팀은 한국뿐이었다. 일본은 투수 마타요시 가쓰키(27·주니치), 포수 가이 다쿠야(25·소프트뱅크), 내야수 야마카와 호타카(26·세이부)를 뽑았다. 마타요시는 올해 50경기 8승3패 21홀드 평균자책점(ERA) 2.13을 기록했고, 가이는 타율 2할3푼5리, 5홈런이지만 차세대 포수로 꼽히며 야마와카는 올해 78경기만 뛰고도 타율 2할9푼8리 23홈런 61타점을 올렸다.

일본의 WC는 이날 승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야마카와는 1-4로 뒤진 6회 2점 홈런을 날리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승부에 가정법은 무의미하다지만 일본 WC의 이 홈런이 없었다면 한국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차세대 국대 4번' 한국 야구 대표팀 김하성이 16일 일본과 APBC 개막전에서 1점 홈런을 터뜨린 뒤 그라운드를 돌며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도쿄돔=KBO)
'차세대 국대 4번' 한국 야구 대표팀 김하성이 16일 일본과 APBC 개막전에서 1점 홈런을 터뜨린 뒤 그라운드를 돌며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도쿄돔=KBO)
이미 지나간 패배의 아픔을 곱씹는 것은 소용이 없다. 이날 패배에서 어떤 의미와 교훈을 얻는 게 중요하다. 구창모(NC), 김윤동(KIA), 함덕주(두산) 등 필승조의 실점은 아쉽지만 어차피 한번쯤은 겪어야 할 국제대회 경험이다. 대신 장현식(NC), 김하성, 이정후(이상 넥센), 하주석(한화), 류지혁(두산) 등은 이날 일본 야구의 심장에서 일본인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며 자신감을 얻었다.

이번 대회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다. 대표팀이 정말 집중해서 바라보는 곳은 내년 아시안게임과 2019년 프리미어12, 2020년 도쿄올림픽이다. WC 없이도 일본을 이 정도로 밀어붙였다는 것만으로도 대표팀에게 주는 효과는 크다. '너희들은 WC가 있어야만 이길 수 있지?'라는 심리적 우위를 얻을 만하다. 특히 프리미어12나 올림픽에서 이 기억은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일본은 당초 WC를 뽑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포함시켰다. 2015년 프리미어12 당시 떼논 당상처럼 여겨지던 우승을 한국에 내준 아픔을 상기했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한국에 패배 직전까지 갔다가 기사회생했다. APBC로 '사무라이 재팬'의 사기를 돋우려고 했던 일본의 의도는 개막전에서는 일단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한국 야구에 대한 일본의 두려움은 사리지지 않았다. 일본은 2년 전 프리미어12 때도 개막전에서 한국을 이겼지만 4강전에서 충격의 대역전패를 안았다. 안방에서 한국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만 봐야 했다.

선 감독은 이날 경기 후 "졌지만 좋은 경기를 했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일본은 이날 이겼지만 이긴 게 아니었다. 패배 직전에서 기사회생하면서 가까스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한국은 졌지만 그 패배의 이면에는 수확이 많았다. 특히 이날 패배는 선수들에게 이를 갈게 할 투지를 키워줬을 터. APBC 개막전의 진짜 승자는 어쩌면 일본이 아니라 선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일지도 모른다.

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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