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의 인내심이 결국 호랑이를 이긴 것이다. 그러나 새로 써진 2017년 단군신화의 결말은 달랐다. 호랑이가 결국 곰을 이겼다. 단군신화와 달리 인내심 대결은 아니었지만 마지막에 웃는 주인공은 곰이 아닌 호랑이였다.
KIA 타이거즈는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두산 베어스를 7-6으로 제압하고 정상에 올랐다. 전신인 해태 시절을 포함해 통산 11번째이자 2009년 이후 8년 만에 맛보는 우승이다.
정규리그를 1위로 마치고 일찌감치 한국시리즈를 준비했던 호랑이 군단은 사상 첫 '단군 매치'에서 디펜딩 챔피언 두산을 꺾고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출발은 좋지 못했다. 그러나 마지막은 화려했다.
KIA는 25일 안방인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에이스 헥터 노에시를 내고도 3-5로 패했다. 로저 버나디나가 3점 홈런을 터트렸지만 긴 휴식기 탓이었는지 나머지 선수들의 방망이가 잠잠했다. 든든한 2루수 안치홍의 수비 실수가 결국 실점의 빌미까지 제공하면서 아쉬움은 더했다.
불리하게 시작한 한국시리즈. 하지만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2차전부터 KIA의 반격이 시작됐다. 그 중심에는 양현종이 있었다. 구단 역대 최초로 좌완 투수 20승을 거두며 화려한 정규시즌을 보낸 양현종은 KIA의 구세주가 됐다. 큰 경기에 약하다는 꼬리표가 있었지만 이날은 달랐다. 묵직하고 빠른 직구를 앞세워 두산 타선을 요리했다. 완급 조절도 일품이었다. 그리고 무실점 호투로 완봉승을 거두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놨다.
양현종의 호투로 KIA 마운드는 안정감을 찾아갔다. 3차전에서는 팻 딘이 기를 이어받아 호투했다.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던 나지완은 9회초 승부의 쐐기를 박는 투런 홈런을 터트려 팀의 6-3 승리를 견인했다. 2009년 SK 와이번스와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쏘아 올린 끝내기 홈런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4차전은 '영건' 임기영이 책임졌다. 그의 첫 한국시리즈 등판이었지만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직구처럼 들어오다 뚝 떨어지는 일품 체인지업에 두산 타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타선에서는 로저 버나디나가 단연 돋보였다. 1차전 3점 홈런으로 힘을 과시한 버나디나는 매 경기 맹타를 휘두르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전날 열린 4차전에서는 5타수 3안타 2타점 1득점으로 펄펄 날았다.
5차전의 주인공은 단연 이범호였다. 1-0으로 앞선 3회초 만루 홈런을 터트리며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KBO리그 최다 만루 홈런 기록(16개) 보유자답게 가을야구를 시원한 만루 홈런으로 장식했다.
정규시즌에서 불안함을 노출했던 불펜도 우승에 힘을 보탰다. KIA의 정규시즌 불펜 방어율은 5.71였다. 리그 8위다. 단일 시즌 팀 타율 1위(.302) 기록을 갈아치운 타선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가을야구에서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줬다.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편안한 투구를 보여줬다. 김세현은 3, 4차전에 연달아 등판해 뒷문을 단단히 잠그며 2세이브를 챙겼다. 이날 다소 흔들리며 추격을 허용하는 모습을 연출했지만 결국 역전까지는 내주지 않았다.
투타의 조화로 긴 침묵을 깨고 마침내 정상에 오른 호랑이 군단. 그들은 올 시즌 그 어느 때보다 가장 따뜻한 겨울잠을 자게 됐다.
잠실=CBS노컷뉴스 송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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