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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PD인 '땐뽀걸즈' 감독이 말하는 이번 파업의 의미

[노컷 인터뷰] 영화 '땐뽀걸즈' 이승문 감독 ②

2017-10-30 15:55

영화 '땐뽀걸즈' 이승문 감독이 30일 오전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시네마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영화 '땐뽀걸즈' 이승문 감독이 30일 오전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시네마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댄스스포츠로 활력을 얻고 학교생활에 재미도 붙이는 열여덟 소녀들과 '멋진 어른' 이규호 선생님의 격의 없는 사제지간을 담은 영화 '땐뽀걸즈'(감독 이승문)는, 개봉 5개월 전에 방송으로 이미 전파를 탄 바 있다.

하지만 '방송'이고, 'KBS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 틀 안에 존재했기에 제작자가 처음 설정한 방향을 모두 살려낼 순 없었다. 하고 싶었던 얘기는 영화에 더 잘 담겼다는 게 이 감독의 설명이다. 영화로 재탄생하게 되면서 '땐뽀걸즈'라는 이야기가 자기 주인을 잘 맞춰서 가게 된 것 같다고도 전했다.

KBS PD인 이승문 감독은 현재 57일째 진행 중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총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정신없는 와중이어서, 정작 믿고 지지하는 동료들과는 본인의 첫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지 못했다. 그래서 이 감독이 올해가 가기 전 이루고 싶은 바람은, 이번 파업을 성공적으로 마쳐 이른바 'PD사회'에서 작품 이야기를 마음껏 해 보는 것이다.

30일 오전,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시네마에서 만난 이 감독은 '땐뽀걸즈' 같은 실험을 더 활발히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바라기에 파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컷 인터뷰 ① '땐뽀걸즈'의 평등한 사제관계, '판타지'만은 아닌 이유)

일문일답 이어서.

▶ '땐뽀걸즈'가 맑고 청량한 영화가 된 데에는 가수 김사월, 윤중이 참여한 OST 덕이 컸을 것 같다. 함께하게 된 계기는.

아, 그건 방송 때부터 이미 썼다. 원래 2월 방송이었는데 4월로 밀려서 음악감독이랑 작업을 오래 하게 됐다. 우연히 작업 기간이 늘어났고, '어쨌든 음악과 춤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결과적으로 음악이 떠오르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대화를 나눴다. 처음엔 댄스스포츠 음악들을 갖고 해 볼까 했는데 쉽지 않더라. 일본 포크가 주는 아주 무심한 듯한 위로가 있거든요. '심야식당' 프롤로그 음악 같은. 그런 걸 한 번 생각해 보자 했고, 마침 사월(인디 뮤지션 김사월) 씨 목소리랑 잘 맞았다.

▶ 영화에 삽입된 노래 가사에 '땐뽀반' 아이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묻어 나와서 좋았다.

너무 직접적인 표현 아니냐 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의도를 음악감독과 의도했던 바가 있다. 단순하고 수수한 느낌? 음악이 뭔가를 감추거나 고조시키기보다는 영상이랑 같이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막 꼬는 걸 안 했다. 윤중(음악감독) 씨가 떠오르는 대로 잘 써 주셨다.

영화 '땐뽀걸즈' 예고편 (사진=KBS 예고편 영상 캡처)
영화 '땐뽀걸즈' 예고편 (사진=KBS 예고편 영상 캡처)
▶ 제작자로서 '땐뽀걸즈'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모르겠다. 영화를 제작하면 크게는 시대, 좁히면 동시대의 수많은 이야기들에 (제 작품이) 껴 있는 거잖아요. 이야기라는 게 어떤 캐릭터들이 의자에 쫙 앉아있는 모양이라고 한다면 '땐뽀걸즈'는 어떤 모습일까 전경을 생각해 보게 된다. 의자에 비해 너무 큰 캐릭터도 있고, 소소한 척하면서도 너무 화려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이때 저희 이야기를 위치 짓는다면, 그 사이에서 뭔가 '자세히 봐야 보이는' 소박한 옷을 입은 아이 같다.

이 이야기는 도대체 뭘까. 굳이 부풀리지 않는 걸 해 보고 싶었고, 거기에 맞는 친구들을 잘 만나서 이야기가 잘 앉아있는 거 같다. 요즘은 이야기를 엄청 부풀리는 세상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TV를 보거나 영화관에 가는 게 꺼려지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야기가 부풀려지면 실제 개인들의 삶은 그만큼 왜소화되는 것 같다.

▶ '트위터의 영화'라고 할 만큼 트위터 유저들에게,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지지가 높은 것 같다.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그냥, 모르겠어요. 편견인지도 모르는데, 촬영할 때도 처음부터 이것에 감응할 나이 든 남성이 많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를 먼저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KBS스페셜'의 주 시청층은 50대 이상 남성들이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말하면 물건을 '다른 매대'에 놓는 거잖아요. (웃음)

우연히 영화가 나오고 나서 흘러갔던 상황을 보면 제 주인을 찾아서 잘 갔던 것 같다. 가치를 발견해 줄 사람을 만났다. 나이는 굳이 언급 않더라도 남성보단 여성에게 소구되는 게 많은 것 같다. 기본적으로 '여고시절'이라는 배경이 있고. 아마 이규호 선생님을 보는 시선도 (남녀가) 다른 부분이 있고.

▶ 직접 영화 후기를 리트윗하는 등 반응을 적극적으로 본다고 들었다. 많은 후기를 봤을 텐데 기억에 남는 게 있나.

비판적인 것들이 더 남는다. 근데 뭐 다 정확하게 봐 주신 거였고, 언급할 만큼 많은 양은 아니었다. 좋았던 것 중에서는 타래(140자 제한인 트윗을 연달아 쓰는 것)로 엄청 많이 써 주신 분이 있었다.

아, 이건 쓸 수 있으면 써 주세요. 저는 20대 초반부터 듀나(필명을 쓰는 영화 칼럼니스트이자 SF 소설가) 님의 팬이었다. 그 듀나 님이 별 세 개 반을 주셨어요! (웃음) 한국영화에 별 네 개 잘 안 주시는데 세 개 반. (듀나 님께) 언급이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 어려운 말을 기분 나쁘지 않게 잘 쓰시는 분이고, 그래서 너무 좋았다. (웃음) 듀나님 최근 공격을 받으셨던데 힘내셨으면 좋겠다.

'땐뽀걸즈'는 영화화되기 약 5개월 전인 올해 4월 13일 KBS 1TV에서 'KBS스페셜'로 방송됐다. (사진='KBS스페셜' 예고 캡처)
'땐뽀걸즈'는 영화화되기 약 5개월 전인 올해 4월 13일 KBS 1TV에서 'KBS스페셜'로 방송됐다. (사진='KBS스페셜' 예고 캡처)
▶ 처음 다큐 준비할 때 사내반응은 어땠나. 흔히 알고 있는 'KBS 감수성'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어서 낯설어 했을 수도 있을 듯하다.

방송본 낼 때는 좀 힘들었다. 우리가 흔히 (편집되기 전의 촬영물을) 원단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걸 갖고 검은 양복을 만들 수가 없는 거다. (웃음) 그런데 검은 양복 비슷하게 만들려는 시사 과정이 있었다. 그럼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할까? 그래도 원래는 이런 모습인데! 하는 생각 끝에 어느 정도 타협된 지점에서 방송이 나갔다. 제가 너무 아쉽고, (제작자로서) 양심을 저버렸다 정도의 결과는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또 영화 제의가 들어왔던 것 같다.

▶ '땐뽀걸즈'에 앞서 지난해에는 성장다큐 '5월, 아이들'도 만들었다. 원래 '아이들'에 집중해 왔나.

원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제가 대단히 꽂혀있거나 한 건 별로 없다. (지금까지 만든 작품을) 순서대로 보면 다 이해가 되실 거다. 제가 처음 했던 프로가 응급실을 다룬 '생명 최전선'이다. 거기서 소아응급실에서 아이들을 본 거다. 그때 서울대 응급실에 시한부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았다. 뭔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5월, 아이들'을 만들었고. 소아 호스피스 얘기를 알게 돼 의사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해 한 번 더 했다.

'5월, 아이들'에 나온 수진이란 친구가 17살에 뇌종양으로 죽었다. 방송 나가기 이틀 전에. 그 친구가 원했던 일상이 '땐뽀반' 아이들의 일상이었던 것 같다. 일상의 가치를 원했지만 그 부분이 결핍된 아이의 증언을 들으며 관심사가 좀 그렇게 진행된 것 같다. 어른들은 그렇게 안 찍어봐서 잘 모르겠는데, 아이들은 계속 지켜본 뒤 자기가 들어줄 만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면 (찍는 사람에게) 너무나 많은 걸 들려주고 보여주는 존재라는 걸 경험적으로 느꼈다.

▶ 2012년 KBS 95일 파업 당시 막내기수였던 38기 PD다. 지금도 5년 만에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사교양PD로서 맞은 이번 파업의 의미는.

저는 '땐뽀걸즈' 같은 프로그램 혹은 이야기를 계속 만들고 싶다. 이걸 지속적으로 만들려면 어떤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시스템을 세우려면 지난 9년간 언론장악 속에서 만들어졌던 시스템을 무너뜨려야 한다, 일단. 꼭 이것 때문에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너무나 크다. 기존의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토대를 만들려고 너무나도 절박하게 싸우고 있다. 되게 단순한 이유다. 언론인이 말을 하려면 시스템이 필요하다. 개개인의 뛰어난 능력만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이승문 PD가 제작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파업 영상 '50일의 썸머' (사진='50일의 썸머' 캡처)
이승문 PD가 제작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파업 영상 '50일의 썸머' (사진='50일의 썸머' 캡처)
▶ 제작자로서 자율성이 침해되는 경험이 자주 있었나.

아주 단순하게 보면, 제가 어떤 아이템을 내고 완성하는 과정에서 옆에 있었던 선배들이 이제 상사가 됐다. 거제도에서 선생님이 학생한테 천 원짜리 주는 걸 봤다는 걸 전할 때 '이런 게 있어요' 하고 알리는 것과 '이걸로 해도 될까요?' 묻는 건 다른 문제다. 그동안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대상이 보고하는 대상으로 바뀐 거다. 상상력이 사라진 것이다. (PD 개인이)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지지받고 인정받는 과정이 되게 중요한데 그게 무너진 것 같다.

그 전에는 팀장, 부장, 국장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이 얘기를 해도 되나' 하고 조심하지 않았다. 차츰차츰 조심해야 할 사람들이 많아졌다. (웃음) (작품에 대한) 얘기를 했던 선배들, 프로그램에 매진해 있는 사람들은 팀장, 부장, 국장이 안 되더라. 주로 관료적인 사람들이 됐다.

▶ '땐뽀걸즈'를 찍은 김훈식 감독과 현재 총파업을 기록하고 있다던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파업 끝나고 다 같이 볼 영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파업 전체를 기록해 달라'는 게 의뢰 내용이었다. 저는 가능하면 파업을 이기고, 시민들에게 반성 한 번 변명 한 번 해 봤으면 좋겠다. (웃음) 영화 '공범자들'이 지난 9년간 가해자들의 역사잖아요. 피해자들의 역사랄 건 없지만, 이렇게 소소한 사람들이 많이 힘들었고 많이 싸웠지만 계속 졌고, 여러분들이 안 봐 주실 수도 있지만 '우린 이랬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 물론 반성이 앞서야겠고. (파업 영상은) 조합원 인터뷰를 많이 해 보려고 한다. 인터뷰 다큐로 생각 중이다.

▶ 파업이 끝나고 제작현장으로 돌아갔을 때 하고 싶은 아이템이 있나.

파업 끝나기 직전 부서가 '소비자고발'이어서 아마 그걸 하겠죠. (* 이승문 감독은 '땐뽀걸즈' 방송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 프로그램이 바뀌었다) 혹시라도 제게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회사가 똑똑하다면 주겠죠? (웃음)

되게 해 보고 싶었던 거는 세운상가 같은 거였다. 너무 궁금했다. 가장 남루한 데서 가장 고급 LP를 트는 곳이지 않나. 요즘 길 가면서 그 생각 많이 드는데, 공구사, 페인트사, 철물점 저런 분들은 뭐 먹고 사나 하는 거였다. 저런 공간을 거점으로 어떤 사회가 있지 않을까. 서로 회식도 할 것 같고. 황정은 씨가 단편 '웃는 남자'에 그런 점을 포착해서 쓰셨더라. (철물점 등은) 진짜 조금 있으면 사라질 것 같다. 조금 긴 호흡을 가지고 담고 싶다.

▶ 올해가 가기 전에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파업 승리도 있고. 관객분들이랑은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파업 때문에 제가 이만큼 제작하게 힘을 줬던 너무나 사랑하는 PD사회와는 작품 얘기를 해 본 적이 없다. 제가 좋아하는 선후배 동료들과 '들어가서 이런 것 만들어야 된다'고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다. 지금은 데면데면하기도 하고, 파업 중인데 저만 양복 입고 인터뷰하는 게 뻘쭘하거든요. 꼭 칭찬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한 번만 그냥 속 시원하게 얘기해 보고 싶다.

(파업) 이겨야 할 텐데… 이제 저도 책임 있게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해 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파업 끝나면) 제가 들어가서 해야 되는 거다. "선배, 저 영화 했잖아요.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해요. 우리 이런 거 해도 돼요"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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