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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관심이 만들어 낸 넘치는 감동, 영화 '땐뽀걸즈'

[노컷 리뷰]

2017-10-29 21:27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땐뽀걸즈' (사진=KT&G 상상마당시네마 제공)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땐뽀걸즈' (사진=KT&G 상상마당시네마 제공)
카메라는 이따금 아름다운 풍경을 비춘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코스모스와 초록빛 가득한 풀이 싱그러움을 뽐내는 순간, 왠지 모를 평온함마저 느껴진다. '땐뽀걸즈'(감독 이승문)에 나오는 소녀들은, 바로 그 코스모스 같다. 바람에 흔들릴 수는 있지만 결코 꺾이지 않고, 제 힘으로 서 있는.

영화 배경이 되는 거제여상에서는 학교 졸업 후 조선소에 취업하는 게 가장 '보통의 길'이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조선소가 주변에 그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미래에는 통 관심이 없어도, '땐뽀'(댄스스포츠)에만은 열정을 쏟는 아이들이 있다.

김현빈, 배은정, 박혜영, 박지현, 박시영, 심예진, 김효인, 이현희. 8명의 소녀들은 체육시간과 방과 후를 기다린다. 이규호 선생님에게 배우는 차차차, 자이브를 추는 시간, 기본 동작을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 연습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재미있기 때문이다.

◇ 훈계하기보다는 귀 기울이고 관심을 보내는 선생님

'땐뽀걸즈'는 동아리 대회에 나가게 된 아이들과, 그들을 독려하는 이규호 선생님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상감은 아니고 입상 정도만 해도 잘 하는" 것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우우~' 하는 야유를 보내지만, 이규호 선생님은 재차 말한다.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높은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다다라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닦달하지 않고, "딱 해 갖고 멋지게" 하는 것 자체로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예쁜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이규호 선생님의 '포용'은 영화 내내 발견된다.

수업이 끝나도 연습실에서 땀방울을 훔치는 아이들을 위해 중국요리, 치킨 등 배달음식에서부터 직접 구운 삼겹살을 대령하는가 하면, 연습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꼭꼭 버스비를 챙겨준다.

거제여상 '땐뽀반'의 이규호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동작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 (사진=KT&G 상상마당시네마 제공)
거제여상 '땐뽀반'의 이규호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동작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 (사진=KT&G 상상마당시네마 제공)
학교생활을 무료하게 여겼던 아이들에게 '댄스스포츠'라는 새로운 세계를 알려준 이규호 선생님은, 아이들이 여간해선 잘 드러내지 않는 속내까지도 귀 기울여 듣고 아낌없이 마음을 쓰는 사람이다.

보살펴 줄 어른이 없어 월세를 스스로 벌어 사는 현빈의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는 데 몹시 미안해하고, 어린 동생들을 챙겨야 하는 혜영이에겐 간식을 사 들려 보내는 따뜻함은 '아, 내게도 저런 선생님이 있었을까' 하고 과거를 돌아보게 만든다.

수업에 앞서 번듯한 옷차림을 하고 오자 "다 컸네! 장가 가자"고 하는 아이들의 농담에도 그저 웃음지을 뿐인 이규호 선생님은, 불필요하게 '교사'나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억지로 끌고 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땐뽀반' 활동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을 때나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않을 때 등 꼭 필요한 순간에 쓴소리를 전한다. 흡연 경력이 5년이 되었든, 술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든, 가끔씩 지각하고 결석을 하든, 이규호 선생님은 그걸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또한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아이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한 발 물러설 줄 아는 인물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되, 어쩌다 조언을 건네는 게 그의 방식이다.

승진 생각은 없는 거냐는 동료 교사의 걱정 섞인 질문에 "승진하려고 선생님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애들을 잘 가르쳐서 사람 되게 만들어 졸업시켜 주는 게 우리 임무"라고 답하는 이규호 선생님. 댄스스포츠를 접하고 난 뒤 보다 신나게 학교를 다니게 된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 본 그였기에 가능한 대답이 아니었을까.

◇ '이미지' 아닌 실재하는 '아이들'에 집중하다

동아리 대회에서 댄스스포츠를 선보인 '땐뽀반' 아이들 (사진=KT&G 상상마당시네마 제공)
동아리 대회에서 댄스스포츠를 선보인 '땐뽀반' 아이들 (사진=KT&G 상상마당시네마 제공)
보호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청순, 순수, 섹시함 따위의 성적인 대상으로 소비되기 일쑤인 여고생의 '이미지'가 아니라, 여고생 아이들의 '진짜' 모습에 집중한 것 역시 '땐뽀걸즈'의 미덕이다. 보탬이나 뺌 없는 날것의 열 여덟 소녀들이 살아숨쉰다.

수업시간에 대놓고 자고, 라이터로 그을린 나무젓가락으로 속눈썹을 컬링하고, 머리를 물들이거나 볶고, 각기 취향대로 화장을 하며, 허리 둘레가 28이라는 소리에 "그냥 24라고 합시다"라고 너스레를 떨고, 수학 시험 때 몇 번으로 찍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나누는 열 여덟들의 일상에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으레 '학습 지진아' 혹은 '문제아'로 그려졌을 여타 작품들과 '땐뽀걸즈'가 구분되는 가장 확실한 지점이다. 다큐멘터리임에도 영화 안에서 이 아이들은 결코 '교화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은 의젓하다. 그리 내키지는 않지만 조선소에 취업하는 것이 어느 정도 '정해진 미래'라는 것을 알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아 힘들 아빠를 걱정하고, 아픈 엄마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보고, 아르바이트 때문에 '땐뽀반' MT에 못 가자 "내가 원하는 것 두 개를 가지지는 못하니까"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가장 사랑하는 '땐뽀반' 활동에도 열심이다. 단장인 시영은 앞으로 아빠를 언제 볼지 모르지만 대회를 앞뒀기 때문에 연습에서 빠지겠다고 하지 않는다. 영화 초반만 해도 스텝을 잘 맞추지 못했던 은정은 틈날 때마다 연습을 한 끝에 실력이 늘었다는 칭찬을 받는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연습시간이 부족한 현빈은 엄지 발톱이 깨지는 줄도 모르고 춤에 몰입한다.

'같이' 하는 활동이기에 생길 수밖에 없는 갈등도 아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헤쳐 나간다. 속상한 마음에 날선 말이 나갈 때도 있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분위기를 잡고서는 깜짝 생일파티를 선물할 줄도 안다.

◇ 사랑이 가득한, 반짝이는 영화 '땐뽀걸즈'

'내게도 이런 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드는 선생님과 진솔해서 더 눈길이 가는 아이들. 서로를 향한 묵직한 '사랑'은 관객들에게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분명 슬픈 장면이 아님에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다.

아이들은 사실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 그 위치에 따라 사람들이 어떻게 대할지도 예상한다. 충분히 다가오지 않은 채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자신을 재단하는 숱한 어른들을 만났을 그들에게, 사소한 부분도 바라보고 기다려 주는 이규호 선생님은 특별하다.

아이들은 "선생님이라서" 땐뽀반을 하고, 열심히 하려고 했다고 스스럼 없이 말한다. 댄스스포츠를 알고 나서 맞은 변화도 작지 않다. 사람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을 때의 뿌듯함, 처음에는 서툴렀던 동작이 몸에 배어 나중에는 엄청 잘하게 됐을 때의 짜릿함을 경험하며 아이들은 자란다.

이규호 선생님 역시 아이들로부터 큰 사랑을 느낀다. 학교 축제 무대에 오르기 전 준비한 영상에서 '땐뽀반' 아이들은 담담하게 고마움을 표한다. "항상 너무 고마워서 큰 게 생각나지 않"고, "그냥 한 명 한 명 챙겨주는 게 좋"으며, "잘하는 게 아닌데도 열심히 하라며 봐 준 게 고맙"고, 아쉽겠지만 "기쁜 마음으로 멋지게 헤어지고 싶"은 아이들의 진심에, 그의 눈가도 촉촉해진다.

'건강한', '사랑스러운', '반짝이는', '울컥하는', '인류애가 충전되는'… '땐뽀걸즈'를 본 관객들이 남긴 감상이다. 영화에 붙는 수식어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제 간의 평등한 사랑과 댄스스포츠의 활기와 가슴 벅찬 감동이 있는 '땐뽀걸즈'를 추천한다. 기분 좋아지는 영화를 기다렸던 당신에게.

'땐뽀반' MT 단체사진 (사진=KT&G 상상마당시네마 제공)
'땐뽀반' MT 단체사진 (사진=KT&G 상상마당시네마 제공)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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