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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데뷔' 문소리, "내 영화로 젠더 감수성 높아지길"

[노컷 인터뷰] 배우 문소리가 '여배우는 오늘도'의 메가폰을 들게 된 이유

2017-09-20 06:00

'감독 데뷔' 문소리, "내 영화로 젠더 감수성 높아지길"
감독 문소리의 재능은 어느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그가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 영화인으로 살아간 18년 동안, 수없이 고민하고 치열하게 스스로와 싸워 온 결과물이다.

그의 첫 감독 데뷔작 '여배우는 오늘도'는 그만큼 단단한 연륜과 신인 감독다운 패기로 넘쳐난다. 단순히 대학원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한 이답지 않게 문소리는 오랜 시간 영화 현장에서 느끼고 경험한 이야기들을 오롯이 담아냈다.

무엇이 문소리를 행동하는 여성 영화인으로 만들었는가. 답은 간단하다. 영화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아직도 그의 가슴 속에서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영화계는 '직장'이나 다름없다. 능력이 뛰어난 자신에게 '직장'이 기회를 주지 않기 시작하자 문소리는 그런 문화를 조금이라도 바꾸고자 직접 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누구나 문소리처럼 영화를 제작해 속시원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유명인이 삶의 민낯을 이렇게나마 보여주는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사실 이미 가능성은 넘치게 엿보였다. 멋모르던 시절, 민주노동당 당원임을 고백했을 정도로 문소리는 사회적 시선의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배우였다.

'여배우의 삶'이라는 소재를 제외하더라도 모두에게 공감을 자아내는 연출적 감각과 메시지는 문소리와 그의 조력자들이 함께 이뤄낸 성과다. 여성 배우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오늘날, 문소리가 찾아나선 돌파구가 궁금해진다.

다음은 문소리와의 일문일답.

'감독 데뷔' 문소리, "내 영화로 젠더 감수성 높아지길"
▶ 어쨌든 배우는 연기도 중요하지만 대중 앞에 보여지는 이미지 또한 중요한 직업인데 정말 문소리라는 배우가 가진 삶의 민낯이 가감 없이 공개된 영화였다. 그런 지점들을 생각했을 때는 어렵지 않았나.

- 내가 그렇게 내려올 수 있는 이미지도 아니지 않나? (웃음) 배우에게는 환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 왜냐하면 나와 너무 가까운 우리 가족들은 내 영화에 집중을 잘 하지 못하고 빠져드는데 시간이 걸린다. 영화 자체로 잘 즐기기 위해서는 거리감이나 환상 같은 게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개인 문소리에게 그런 게 필요하지는 않다. 만약 관객에게 배우의 민낯이 필요하다면 그런 것도 다 가져다 쓸 수 있다.

▶ 영화가 총 3막인데 항상 카니발 안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왜 카니발 공간을 모든 이야기의 시작 지점으로 잡았는지 궁금하다.

- 그 때가 가장 고요한 시간이다. 매니저와도 차에서 거의 대화가 없다. 나누는 대화는 가끔 내가 너무 졸린 음악을 틀면 선배님 제가 잠이 온다면서 음악 바꾸는 정도? 고속도로에서 졸리냐고 내가 물어보는 정도? 나만의 공간이라 거기에서 휴식을 많이 취한다. 영화 '오아시스' 때 몸으로 너무 고된 일을 하다 보니 명계남 선생님 본인이 회사에서 운영하던 벤을 내주신 적이 있다. 그 때는 여차하면 옷 벗고 몸을 마사지도 해야 되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 때도 이창동 감독님은 이런 거에 길들여지면 안 된다고 그랬던 말씀이 생각난다.

▶ 영화에 보면 '역시 민노당 배우'라는 말을 듣는 장면이 나와서 조금 놀랐다. 보통 연예인들은 자신의 정치 성향 드러내기를 꺼려하는데 '민노당 당원' 선언 때도 그렇지만 그걸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을 영화에 풍자로 쓸 정도로 당당한 느낌이었다.

- 일단 지금 민노당(민주노동당) 이후로는 당적이 없고, 정당 활동을 하지 않는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을 지지하기는 한다. 사실 예전에는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니까 불이익 받는 경우도 많고, 손해를 보거나 활동하기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많았다. 옛날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최근에도 블랙리스트 사건이 터지지 않았나. 그런데 이 이후에 SNS나 여러 방식으로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연예인들이 훨씬 많아졌더라.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더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 또한 이 사회의 일원이니 당연히 정치적 견해가 있을 수 있다. 다들 (정당 활동을) 하는 줄 알아서 멋모르고 이야기한 거였지만 잘 헤쳐 나왔다. 최근에 문재인 대통령님이 좋아하는 배우가 송강호랑 문소리라고 하셨다는데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나 싶다. (웃음)

'감독 데뷔' 문소리, "내 영화로 젠더 감수성 높아지길"
▶ 자전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이런 소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 그냥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이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영화나 연기가 원래 그런 일이니까. 사실 우리가 하는 과정은 다 가짜를 데려다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걸 만들어내는 거다. 왜 이런 식으로밖에 접근할 수 없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왜 가짜를 통해 진짜를 전달하려고 하나. 이런 구조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한 게 사실이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도 명확하지 않은 것 같고, 이 위를 돌아다니며 어떤 것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감독과 배우, 두 입장에서 역할을 하니 무슨 느낌이었나. 본인 연기를 객관적으로 볼 눈도 필요했을 것 같은데.

- 볼 겨를이 없다. 내가 제일 별로라서 '내가 이거 오케이했니? 미안한데 다시 찍어야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하도 많은 감독님들이 현장에서 문 감독이라고 놀려서 그게 좀 단점이다. 무안하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배우도 전체를 바라보는 눈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케스트라 안에서 바이올린을 담당하고 있지만, 지휘자가 바라보는 전체의 그림이 어떤 것인지, 내가 어떤 역할을 어떤 순간에 해내야 하는지는 그걸 바라보는 눈이 있을 수록 정확해진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에 영화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다. 과거 함께 작업했지만 흥행하지 못했던 영화의 감독 장례식장에서 그가 찍은 평범한 일상의 영상을 보면서 펑펑 우는데 그게 어색하지 않았다. 그 순간 슬픔이 전이되더라.

- 문소리라는 배우가 영화, 영화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데 그러면 영화를 왜 할까. 영화가 우리 인생에서, 그리고 모두에게 왜 그렇게 중요할까. 사람보다 중요한 걸까. 이런 질문을 내게 한 것 같다. 앞으로도 영화 속에서 연기하거나 만드는 현장에 있을테니 그런 업계 종사자들과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관객들에게도 그게 무엇이기에 보러 오는지 그런 질문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나아가는 과정 같다. 개인적으로 감독이라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깊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결국 자기 생긴대로 영화는 나오기 마련이고, 그래야 잘 나오는 거다.

'감독 데뷔' 문소리, "내 영화로 젠더 감수성 높아지길"
▶ 남성 위주의 장르 영화들이 넘쳐나는 영화계라 여성 배우들이 설 자리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여성 배우에 대한 캐릭터의 다양성이 요구되고 있는데 최근 사회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페미니즘 담론과도 별개로 보기는 어려운 영화 같다.

- 영화를 보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영화인으로서의 고민과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도 나타난다. 두 가지 큰 부분이 같이 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현 시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상관이 없을 수는 없다. 여성 혐오 논란이나 페미니즘 담론
등은 여배우의 삶뿐만 아니라 남자 배우들과도 관련이 있다. 이 영화가 한국 사회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고, 여성 영화인 혹은 여성 배우의 역할을 변화시키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 그렇다면 배우 문소리의 외모를 지적하는 중년 남성 캐릭터들은 너무 쉽게 성적 대상화돼버리는 여성 배우들의 현실을 그린 장면인가.

- 그런 남자 캐릭터들을 비난하고 싸우자고 만든 영화는 아니다. 그냥 나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고, 고민할 수밖에 없고, 행동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계에서 십여년 일하면서 운이 좋기도 했고, 혜택받은 바도 많다. 그래서 이제 연기만 할 수 있다면 뭐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내 직장이다. 직장 문화가 어떤지, 수지는 맞는지, 이것이 건강한지 썩었는지, 이런 중요한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건강하게 만드는데 일조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 처음 내 손으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마음 먹었던 계기와 앞으로도 꾸준히 문소리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를 볼 수 있는지 이야기해달라.

- 결국 불만하고 비난한다고 해서 이 시대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내 처지가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내가 영화를 관두면 되는데 마음이 맞고 능력을 모을 수 있다면 영화랑 나랑 이것 저것 해보고 싶었다. 영화랑 나랑 뭘 해볼까 생각했다. 같이 이것 저것 해보자고 제안도 받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직 그럴 겨를도 없고, 더 연기를 하고 그러기에도 지금 빠듯해서…. 그래도 살다보면 무언가 바뀌어서 다시 영화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계획이 없다.

'감독 데뷔' 문소리, "내 영화로 젠더 감수성 높아지길"
▶ 제작부터 개봉까지, 18년 동안 쌓아 온 영화계 지인들의 도움도 컸는지 궁금하다. 문소리 감독을 지지하는 친구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 영화일을 하면서 생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개봉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다.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이 많아서 나랑 만나면 사실 다른 이야기를 할 게 없다. 주구장창 영화 이야기만 하는 거다. 이 시절, 저 시절에 같이 술 마시고 오래 봐왔던, 정말
큰 의지가 됐던 친구들이고 이제 영화를 함께 하는 동료와 동지다. 정말 친구들에게
힘을 많이 받았고, 내 생각이 틀린 건 아닌지 확인을 많이 받기도 했다. 갈증을 술로만 풀 수는 없다. 남들이 다른 영화로 풀어주는 것도 아니니 목마른 놈이 우물판다고
같이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 남편 장준환 감독이 특별 출연을 했다. 한창 영화 '1987'을 찍고 있을텐데 장준환 감독의 출연과 관련해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 '1987' 촬영장까지 가서 아내 연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터뷰를 했다. 처음에
숙소인 모텔방에서 땄더니 홍보하는 친구가 분위기가 아닌 거 같다고 하더라. 그런데 낮에는 영화 촬영한다고 인터뷰를 못하고, 또 사람이 완전 녹초가 돼서 뭘 먹어야
한다니까 먹였다. 거기에서 또 이런 저런 토로를 듣다보니 밖에서 인터뷰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본인이 너무 피곤하다고 해서 아침에 일어난 다음에 모텔방에서 인터뷰를 한건데 분위기가 그래서 사무실에서 결국 다시 땄다. 재미는 있는데 톤이 너무 튄다고 하더라. (웃음)

▶ 배우 문소리를 발굴하고 결국 베니스 신인여우상까지 안긴 이창동 감독 또한 영화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같다.

- 이창동 감독님을 나를 낳아서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를 자신의 젖먹이처럼 키운 분이다. 곧 크랭크인이라 매우 바쁜데 감독님한테도 인터뷰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거절해도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텐데 허락을 해주셨다. 인터뷰 전체 영상을 보면 연출부 왔다 갔다 하고, 감독님이 불쑥 들어오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웃음) 그 와중에도 본인이 낳은 자식이라 책임을 져주시더라. 홍상수 감독님이 나한테 '넌 이창동의 딸'이라고 한 적이 있다. 모든 딸들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가장 영향을 받았고, 큰 가르침을 준 분이다.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가장 일해보고 싶은 감독님을 꼽으라면 나는 죽을 때까지 이창동 감독님이다.

'감독 데뷔' 문소리, "내 영화로 젠더 감수성 높아지길"
▶ 인간 문소리와 이제 배우이자 감독 문소리의 지난 18년을 돌아본다면 어떤 느낌인가.

-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나보다 더한 딸을 낳았고, 영화 감독과는 죽어도 결혼 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부부가 됐고…. 예상하지 않았고 계획하지 않았던 일들이 펼쳐지는데 그게 괜찮다. 감당할만한 재미있는 일들이 펼쳐진다. 영화인 문소리는 내가 헤아리지 못했던 여러 가지 상황도 있었을테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보면 서운하거나 마음이 아프다기보다는 복을 받았다. 운도 좋았고, 많은 감독님들의 사랑 아래 꽃길을 걸었다.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 이야기를 나눌수록 문소리하면 배우나 감독, 어느 한 역할로 정의되기 보다는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는 영화인이 더 어울리는 느낌이다. 실제로 본인은 어떤 영화인으로 남고 싶은지 말해달라.

- 나는 잊혀져도 된다. 다만 내가 참여하고 만들었던 영화들이 오래 오래 시간을 견디고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잃지 않는 영화들이었으면 좋겠다. 그 배우를 몰라도 영화는 얼마든지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제껏 나라는 사람을 커다란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일해본 적은 없었다. 그냥 작품에 참여해서 함께 만들어가는게 좋고 그렇게 일해왔다.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ywj201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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