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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배우들의 '천냥빚 갚는' 말실수 대처법

2017-09-07 06:00

중년 남배우들의 '천냥빚 갚는' 말실수 대처법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는 어렵지만 현명하게 대처할 수는 있다. '말실수'로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을 뻔한 중년 남자 배우들이 시의적절한 대처로 사건을 진화시켰다.

배우 설경구는 최근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 함께 출연한 아이오아이 설현에게 '백치미' 발언을 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달 28일 열린 '살인자의 기억법' 시사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설현에 대해 "백치미가 있는 것 같다. 여배우가 백치미가 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앞으로도 백치미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해 논란이 불거졌다.

'백치미'의 사전적 의미는 지능이 낮은 듯하고, 단순한 표정을 지닌 사람이 풍기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예전에는 여성 배우들에게 자주 사용되곤 하던 수식어였으나 사회적 인식이 변하면서 더 이상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게 됐다.

직전에 영화 '불한당'으로 젊은 여성팬들을 모았던 설경구인지라 SNS 등에서 나오는 비판의 목소리 또한 거셌다. 이제 갓 연기를 시작한 젊은 여성 배우를 폄하하는 뉘앙스의 단어를 쓴 행동 자체가 설경구가 가진 '젠더 감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논란을 인식한 설경구는 하루 만에 곧바로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그는 "설현 씨에 대한 제 표현이 적절하지 못한, 잘못된 표현이었던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순수하고 하얀 도화지 같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는데 짧은 생각으로 표현이 잘못됐다"고 별다른 부연 설명없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이어 "설현 씨에게 사과를 드렸고, 언론 개별 인터뷰 때도 공식적으로 사과를 드리겠다. 앞으로 말하고 표현하는데 항상 신중하도록 하겠다. 모든 서툰 점, 늘 배우는 마음으로 살겠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팬들의 지적에 따라 변화된 지점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배우 김윤석 또한 젊은 여성 배우에 대한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 출연했던 김윤석은 포털사이트 라이브 방송에서 '무리수' 공약을 남발하는 분위기 속 "여배우들의 무릎 담요를 내려 주겠다"고 발언해 빈축을 샀다. 당시 여배우들이 짧지 않은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너무도 쉽게 여성 배우를 성적 대상화하는 불쾌한 발언이라는 비난이 몰려왔다.

공론화에 앞장 선 것은 다름아닌 김윤석의 팬들이었다. 이들은 김윤석 발언의 잘못된 지점을 가감없이 이야기하고, 해당 발언에 대한 의견을 쓴 편지와 함께 페미니즘 도서를 전달했다.

김윤석은 이후 열린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가장 먼저 이 발언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윤석은 "주말이 끼어 있어 사과가 늦은 감이 없잖아 있다. 양말 공약이라는 농담으로 시작됐던 게 내 경솔함과 미련함을 거치면서 상당히 불편한 자리를 초래했다. 분노와 불편함을 느꼈던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깊이 반성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런 공식적인 자리 외에도 그는 자신이 저지른 말실수에 대해 팬카페에서 팬들과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페미니즘 도서 사진을 직접 인증해 변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줬다.

두 사람은 영화판에서 20년 경력이 넘은 중견 배우들이다. 굵직한 대표작들로 젊은 후배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그만한 파급력과 권위를 가진 이들이기도 하다.

'무지함' 혹은 어떤 '상황'이 만든 순간적인 말실수가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유 또한 그 발화 대상자가 이들보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신인 여배우들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구조적 권위 체계를 인식하고 한 발언이 아닐지라도, 이 같은 치명적 실수가 가능했던 이유는 이런 권위 체계와 무관하지 않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아마 그들이 이런 발언을 할 때, 상대에게 모욕을 주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100%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이 배우들이 그들보다 존경받는 선배였다면 장난식으로라도 이런 실수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스스로 권위 체계의 상위에 있다는 자각을 할 필요가 있다. 현명한 배우라면 그럴수록 말을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뜻하지 않게 한 말이 그 아래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거나 폭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들이다"라고 조언을 건넸다.

주류에 속한 이들 배우들이 빠르게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인 것은 현명한 대처로 평가받는다. 자칫 잘못하면 작품뿐만 아니라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었지만, 대중의 비판적 여론을 겸허히 수용하면서 논란이 크게 번지는 것을 막았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어도 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는 어렵다. 특히 이 같은 발언이 문제되지 않는 분위기에서 성장해 살아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말실수' 앞에서 두 배우가 보여준 '변명없는' 사과가 더욱 용기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ywj201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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