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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이 밝힌 '군함도'의 오해와 진실

[노컷 인터뷰] "친일파 단어 일부러 안 써…불편한 이들 분명히 있다"

2017-08-16 15:00

류승완 감독이 밝힌 '군함도'의 오해와 진실
'군함도' 속에 착한 일본인이나 나쁜 일본인은 없다. 다만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편리한 방식대로 조선인들을 통제·지배한다. 선악을 떠나 철저히 지배 권력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조선인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 착한 조선인이나 나쁜 조선인은 없다. 식민지 국민인 이들은 타의로 군함도에 끌려와 강제적인 탄광 노동에 시달린다.

피지배계층인 이들은 처음부터 일본인들이 짜놓은 지배 방식 아래 갇히게 된다. 일본인들에게 이용당하고, 그들이 부추긴대로 분열하기도 한다. 전적으로 일본편에 서서 같은 조선인들을 핍박하는 이들도 있다. '일본 제국주의' 속에서 자라난 '친일 부역자'들이다.

3.1운동 이후 일본은 실제로 이런 통치가 조선인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식임을 알았다. 그들에게는 독립을 위해 결집된 조선인들을 흩어 놓고 분열시킬 세력이 필요했다. 일제강점기 말로 갈수록 변절자들은 더욱 많아졌다. 일제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독립운동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4년 동안 나치에 지배당했던 프랑스는 부역자들을 가차없이 처벌했지만 36년 동안 일제에 지배 당한 우리는 부역자 청산에 실패했다. 그렇게 '친일 부역자 청산'은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과제로 남았다. 심지어 제대로 직면해 본 적 없는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일제의 '가해성'이 부각되지 않고, 조선인 모두를 '피해자'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식민사관과 유사한 역사 왜곡 영화로 따가운 비난을 받았다. '군함도'를 만든 당사자인 류승완 감독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뒤늦게 밝힌 그의 속마음은 세간의 비난과는 상당히 다른 지점이 존재했다. 다음은 류승완 감독과의 일문일답.

류승완 감독이 밝힌 '군함도'의 오해와 진실
▶ '군함도' 탄광에서 일하는 장면 촬영은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실제로 촬영 당시 배우들 분위기나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 허리도 펴지 못하고, 공기도 좋지 않고 당연히 힘들었다. 그런데 프로듀서가 끌려간
분들은 얼마나 더 힘들었겠느냐고 이야기를 하더라. 당시 입소식 사진을 보면 10대 소년들이 있다. 영화에도 보면 공간이 좁으니까 더 어린 애들로 데리고 오라고 하지 않느냐. 어린 시절에 '군함도'에 다녀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생존한 분들이 있는 거다. 그래서 함부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굉장히 조심스럽고, 여전히 그런 부채감이 남아 있는 것 같다.


▶ 탈출 장면을 찍는 동안, 거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고 들었다. 군함도라는 공간에서 왜 하필 '탈출'을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 2013년도 봄에 군함도 사진을 봤고 역사를 알게 됐다. 그 섬은 감옥은 아니다. 관리자들도 누군가를 억류할 의무가 없는 그냥 회사 사람들이다. 그런데 강제로 징용 끌려갔던 입장에서는 '감옥섬'이었던 거다. 다루는 세계 안의 인물들 심리 상태를 알아야 말과 행동을 하게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 그래서 취재를 하며 이야기 방향을 고민했다. 그럴수록 이 인물들이 왜 당시에 해방을 원했을까,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정치적인 입장이나 목적보다 그냥 삶이 너무 힘들었던 거다. 너무 배가 고프고, 1일 2교대 근무였는데 14시간 씩 초과 근무하고, 다다미는 바닷물에 젖어 있고…. 실제로 일본인들이 조선인에게 화를 내지 않고, 직접 때리지도 않았다. 많은 인구가 통제가 안되니까 부역자들을 만들어 놓았던 거다. 어떤 고발의 목적을 넘어서 이 세계 속 열망을 이뤄주고 싶었다. 준비를 하고 발전시키면 시킬 수록 이 사람을 탈출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또렷해졌다.

류승완 감독이 밝힌 '군함도'의 오해와 진실
▶ 이런 대규모 집단 탈출 장면을 어떻게 구상하고 준비했는지 알려달라.

- 역사상 400명 규모의 집단 탈출은 없었다. 광복군이 침투한 상황에서 이것이 가능할법한 상황인지 검증하기 위해 군사 전문가까지 동원했다. 석탄돌이나 다이너마이트를 빼돌리는 등 영화에 나오는 장면은 실제로 탄광 파업이 이뤄졌을 때 경비 병력에 저항하던 방식이다. 다다미로 방패를 만들어 쓴 것도 마찬가지다. 쾌감으로 가는 전투가 아니라 실제 벌어질 법한 상황을 묘사했다. 이번 영화는 전경과 중경 그리고
후경까지 가는 그 깊이가 깊다. 모든 배우들이 화면에 담기는 타이밍이 맞아야 하니까 하루에 두 컷만 찍을 때도 있고 힘든 과정이긴 했다.

▶ '군함도'를 불편하게 여기는 시선들이 있었다. 어쨌든 구조적인 잘못은 일본 제국주의에 있는데 왜 피해자인 조선인들끼리 서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줬느냐는 의견이 있더라. 조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식민사관과 비슷하다는 역사 왜곡 논란도 불거졌는데 이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 나도 그런 반응들을 봤다. 사실 이 영화에서 존경받는 독립운동가 윤학철의 존재가
'친일파'였다는 건 반전이다. 지금까지 친일파라는 단어를 일부러 쓰지 않았다. 이 영화가 친일파 찾기 게임으로 변질돼 실제 군함도 속 삶의 묘사를 완전히 망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이 윤학철의 존재에 순수하게 충격을 받아야 뒤의 사건도 힘을 받을 수가 있었다. (나쁜 일본인이 아닌) 친일부역자가 나오니까 상당히 당황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생지옥의 상황에 사람이 있고, 그런 상황 자체는 일본인들이 결정해서 만든 것은 맞다.

류승완 감독이 밝힌 '군함도'의 오해와 진실
▶ 연출 의도를 보면 일본 제국주의를 옹호한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친일부역자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 같다.

- 강제 징용 역사가 있는 '군함도'라는 공간을 영화로 다룬 게 우리가 처음이다. 아마 여기에 나오는 정보를 받아 들이는게 가장 충격적이었을 것 같다. 영화를 끊임없이 복기해봐도 넣어야 했던 장면은 전부 있어서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나는 여러 가지 이견과 논란이 시간이 지나서 건강해졌을 때 무시무시한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건 결정적인 기회를 잡은 거다.

▶ 우리 근현대사에서 '친일부역자' 즉 '친일파들'은 사실 지워져있다. 일본 제국주의는 '가해자'라는 명확한 프레임이 있는데 여기에 부역한 조선인들에 대해서는 정리된 것이 없다. '군함도' 속 인물들이 이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일본인들은 식민지배 동안 조선인이 열등하다는 인식을 세뇌시켰다. 직접 손대지 않은 채 조선인을 이용하고, 서로 분열시키는 식의 잔혹한 지배 방식을 써온 것이다. 한 축에서는 우리의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가 성공하지 못했다. 그 이후 우리는 전쟁을 치르면서 격동과 혼란의 현대사를 겪어 왔다. 그리고 무엇인가 물타기 하듯이 지금까지 왔다. 나는 분명히 친일부역자들의 역사를 불편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본다. 이걸 덮으려고 하는 이들이 있으니 더 이야기해야 하는 거다.

▶ 여전히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군함도' 강제 징용자들에 대한 배상 또한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인데.

- 영화 '베를린'을 찍으러 독일에 갔을 때 주의 사항이 뭐였냐면 '나치'나 '히틀러'라는 단어를 공공장소에서 사용하면 벌금을 문다는 것이었다. 독일에는 아직도 나치 부역자들을 청산하는 상설기구가 운영되고 있다. 집 앞에 사람 이름이 있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끌려가 희생당한 유대인의 이름이었다. 그 유대인이 살았던 집에 이름을 새겨놓은 거다. 즉결 처형한 흔적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라고 묘지처럼 만들어 놓은 곳이 있는데 유대인 추모를 위해 만든 광장이다. 광장 조성 기금을 낸 회사는 당시 독가스를 제조했던 회사다. 똑같은 전범국인 일본은 과거를 덮으려고 하고, 군함도 탄광의 주인이었던 기업 미츠비시는 경영 구조를 바꿔 체질 개선했기 때문에 배상 의무가 없다고 말한다.

류승완 감독이 밝힌 '군함도'의 오해와 진실
▶ 이런 상황 속에서 어쨌든 '군함도'가 일본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 부정적인 반응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으니까.

- 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후보에 사도탄광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거기에도 역시 강제 징용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그런데 등재 신청을 앞두고 갑자기 이 탄광을 후보에서 떨어뜨리고 다른 곳으로 바꿨다. 아무래도 흔들리는 게 보이기는 한다. 후반작업을 하면서 일본어로 취재하고 굉장히 고생을 했다. 그 이유가 국내에는 군함도에 대한 연구자료가 너무 없다. 파편화된 자료를 다 찾아서 여러 단체들을 인터뷰해야 했다. 일본 르포 작가도 의아해하더라. 왜 한국에 군함도 전문가가 한 사람도 없느냐고. 학계까지 군함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번져서 우리 다음 세대에 더 알리는 게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흥구 선생님의 관람평에 굉장히 감사했었다.

▶ 일본인 캐릭터가 정말 많이 나오는데 일본 배우는 없나? 만약 그렇다면 군함도라는 소재 때문인지 궁금하다.

- 일본 배우들을 캐스팅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아예 에이전시로 대본이 전달되지
않더라. 아직 일본은 군함도에 부정적인 역사를 명기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군함도 자체가 너무 뜨거운 감자라 우익에 의한 불이익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만나게만 해주면 설득할 수 있다고 이야기까지 했는데 만남 자체가 안됐다.

▶ '부당거래', '베테랑' 그리고 '군함도'까지 기득권이나 권력층을 비판하는 의식있는 영화를 만든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에 대해 부담감은 없나.

- '부당거래'도 관객들이 많이 본 영화가 아니다. 많은 대중이 내 영화를 보게 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앞선 영화들도 내가 만든 작품들이지만 '아라한 장풍대작전'이나 '주먹이 운다'도 내가 만든 영화다. 내 안에 굉장히 여러 모습이 있는 것 같다. 어떤 포지션을 취하고 영화를 만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만들고 싶은 것을 따라가고,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을 뿐이다. 사실 내가 계산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물론 내 나이가 아주 젊다고만은 할 수 없어서 이미 패턴을 바꾸기에는 내 방식대로 온 것도 있다.

▶ 마지막으로 '군함도'는 류승완에게 어떤 영화일까.

- 하고 싶은 이야기는 충분히 다했다. 여한 없이 다 쓸어 담았다. '맞다'고 생각한 곳을 향해 달려갔고 완성했기 때문에 감독으로서는 정말 여한이 없다.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ywj201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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