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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연·김동호의 '기습 사퇴'…책임론 피해갈 수 있나

2017-08-14 06:00

강수연·김동호의 '기습 사퇴'…책임론 피해갈 수 있나
간신히 외압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이번에는 내홍에 휩싸였다. 지난 정권이 지나는 동안 내상을 입은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를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또 한 번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올해 영화제 개최가 이제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 현재 영화제는 사무국 직원들의 반발에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김동호 이사장이 전격 사퇴를 선언하며 비상 근무 체제에 들어간 상황이다. 비록 영화제 전면에 등장한 적은 없지만 24명의 사무국 직원들은 정권의 외압 소용돌이 속에서도 부산영화제를 꿋꿋이 지켜왔던 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김동호 이사장에 반기를 들게 된 이유는 명백하다.

지난해 열렸던 부산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은 영화계에 커다란 실망감을 안겼다. 당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검찰에 횡령 등의 혐의로 고발 당해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영화계는 이를 2014년 '다이빙벨' 상영 논란부터 이어진 정치 보복성 고발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 기자회견에서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설상가상, 새로 취임한 김동호 이사장은 서병수 부산시장 대신 영화계에 사과를 건네며 사태를 마무리했다.

영화계의 가장 큰 요구사항이었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 회복이나 서병수 부산시장의 직접 사과는 그렇게 이뤄지지 못했다. 피해 당사자인 부산영화제 집행부가 움직이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영화인 9개 단체들 중 4개 단체가 부산영화제 보이콧을 결의했고, 지난해 부산영화제는 반쪽 짜리 영화제로 치러졌다.


표현의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영화제는 외압에 망가지기는 쉽지만 회복되기는 어려웠다. 영화계와 연대해 위기를 헤쳐 나가도 부산영화제가 예전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강수연 위원장과 김동호 이사장의 선택에 사무국 직원들 또한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그들은 이미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게 '떠나면 영화제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서병수 부산시장의 협박까지 목격했다. 그러나 영화제 개최 일정을 맞추려면 시간이 없었고, 사무국 직원들은 묵묵히 집행부를 따라 일에 매진했다.

성명서를 보면 이들은 계속된 소통의 단절과 강수연 위원장의 독단적 행보에 고통 받아왔다. 영화제 정상화를 위해 보이콧 사태를 해결하려 노력해야 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고(故) 김지석 전 부집행위원장의 빈 자리에 도덕적 논란이 불거진 인물을 임명했다. 실무를 담당하는 건 사무국 직원들임에도 업무에 배제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견디다 못한 사무국 직원들이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복귀와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서자 강수연 위원장과 김동호 이사장은 '사퇴' 카드를 내밀었다. 올해 영화제까지만 참여하고 부산영화제를 떠나겠다는 결심이었다.


강수연·김동호의 '기습 사퇴'…책임론 피해갈 수 있나
사무국 직원들은 이 같은 강수연 위원장과 김동호 이사장의 결정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성명서 발표는 그들에게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었다. 강수연 위원장은 직원들이 제기한 문제에 어떤 협의의 의지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부산영화제가 다시 시끄러워질까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는 전언이다. 그런데 성명서로 문제가 공론화된 상황에서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떠나는 그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부산영화제 관계자는 "집행부에 문제가 있다는 공감은 모두 다 하고 있었지만 성명서 내는 건 정말 내부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지난해에도 어렵게 영화제를 치뤄냈는데 이번에는 안에 문제가 있다는 시선이 생길까봐 의견이 분분했었다"면서 "그런데 성명서를 낸 후에도 전혀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우리에 언질 하나 없이 준비한 것처럼 '사퇴하겠다'고 언론에 입장을 밝히니까 너무 화가 나고 황당했다"고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이어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그렇게 떠나야 했던 자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버리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영화계 보이콧 등 우리가 집행부의 결정으로 인해 입은 피해는 전혀 책임지지 않고, 불만이 있으면 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는 없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부산시 측에서 이들 성명서에 대한 답변으로 발표한 입장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9일 부산시는 '영화제와의 갈등이 오해'라면서 '다이빙벨' 상영 중단 요청이 단순 의견 제시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용관 전 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나 검찰 고발에 대해서도 '보복성'이 아니라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만 따랐다는 주장을 펼쳤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조직위원장을 사퇴하던 당시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이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조사로 관련 증거가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시대를 역행하는 해명이라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영화계 전체적으로 반발이 거세지자 조직위원장 자리를 사퇴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발뺌하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이와 관련한 진상 조사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시대 퇴행적인 입장이 아닌가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영화계와의 폭넓은 연대와 공감대 형성이다.

그는 "성명서에도 썼듯이 영화제가 다시 세워지려면 이전에 영화제를 좀먹었던 '적폐'를 모두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다시 부산영화제가 이전의 자유롭고 풍성한 영화의 장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부산영화제의 주인공은 영화와 영화인들이기 때문에 부산영화제가 처한 상황에 대한 영화계 내부의 공감과 연대가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부산영화제는 사무국과 프로그래머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를 중심으로 비상 체제에 들어가 22회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부산영화제가 과연 영화계·시민들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ywj201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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