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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美대학농구 레전드 이은정 코치의 쓴소리 “팀 훈련 너무 많으면 개인훈련 없어져”

2017-05-29 17:52

인터뷰에응하는이은정코치.
인터뷰에응하는이은정코치.
[마니아리포트 이은경 기자] 미국 루이지애나-먼로 주립대학(ULM) 여자 농구팀에는 한국 출신의 이은정(54) 코치가 있다.

이 코치는 현역 시절 활약상이 담긴 유투브 영상을 통해 3년 전 한국에도 소개가 된 바 있다. 그는 1982년 숭의여고를 졸업하고 ULM(당시 이름은 노스이스트 루이지애나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대학 재학 4년간 팀의 주전 가드로 뛰며 102승15패를 기록했다.

현재 이 코치는 ULM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 있고, 미국프로농구(NBA)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홈구장의 루이지애나주 출신 남녀 농구 레전드들을 기리기 위한 코너에 현역 시절 사진이 붙어 있다.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역 시절 활약상, 미국 대학의 '레전드'로 남은 기록, 그리고 NBA 경기장에 새겨진 이름과 사진 등 이 코치의 스토리는 다시 확인을 해 봐도 한국 농구로서는 거짓말 같은 결과물이다.

이달 초 잠시 한국을 찾은 이은정 코치를 만나 봤다. 이 코치는 이달 초 대한농구협회가 공개모집한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 자리에 지원서를 넣었지만, 영문이력서 외 기타 서류(대표팀 운영계획서, 지도자 자격증 사본)를 첨부하지 않아 서류에서 탈락했다. 이 코치는 “한국에서 지도자로서 내가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꼭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이 코치를 만나 그동안의 궁금했던 점들을 물었다. 그리고 1980년대 깜짝 놀랄 만한 테크니션으로 활약했던 이 코치의 성장 스토리와 훈련 철학도 들어 봤다.

펠리컨스홈구장에전시된이은정코치의현역시절사진.
펠리컨스홈구장에전시된이은정코치의현역시절사진.

1981년 숭의여고 졸업 후 미국으로 갔다. 어떻게 가게 된 건지.
“숭의여고가 당시 미국 쪽에 연결고리가 있어서 전지훈련을 몇 번 갔는데, 그때 나를 눈 여겨 본 코치가 스카우트 했다고 한다.”


미국 대학농구에서 대단한 활약을 했는데, 사실 한국 농구에서는 1981년 이후 ‘사라진 사람’이 됐다. 왜 활약상이 전해지지도 않고, 대표팀에서도 부르지 않았을까.
“글쎄,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미국에 갔을 때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한국과의 커넥션에 대해서 미리 준비하고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나도 한국 대표팀에서 너무 뛰고 싶었는데, 엄마한테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해도 연결이 안 됐던 기억만 남아 있다.”

81년 실업농구 드래프트에서 상업은행에 1순위로 지명이 됐는데도 미국행을 선택했다. 당시 ‘괘씸죄’ 같은 게 적용된 게 아니었을까.
“모르겠다. 당시에 상업은행에 가기 싫어서 울고불고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지도자 분들에게 죄송하지만(웃음). 어릴 때 한국과 미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장충체육관에서 친선경기를 한 걸 보러간 적이 있었다. 그걸 보고 미국팀에 완전히 반했다. ‘나도 미국에 가서 유명한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는 머릿속에 온통 그 목표밖에 없었다. 미국에 갈 때 비자 문제가 생겼던 기억이 있다. 한국농구계 쪽에서 미국에 못 가도록 비자 발급을 막았다고 하는데, 당시 루이지애나 주지사가 직접 한국에 전화를 해서 비자 문제를 풀었다고 하더라. 사실 88 서울올림픽 때는 정말 대표팀에 너무나 들어가고 싶었지만, 나에게 연락도 없었고, 나는 커넥션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내가 참 미웠을 거야.”

현역 시절 동영상을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창의적이고 파워풀한 플레이를 한다. 성인 이후 미국에서 활약을 했지만, 사실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토종 농구’를 배운 것 아닌가. 어떻게 그런 플레이를 배웠나.
“나는 광희국민학교 5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그때 처음 가르쳐 주신 김용성 선생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내가 농구부 들어간지 얼마 안 됐을 때 ‘너는 기술적으로 소질이 있다’면서 드릴 위주의 훈련을 재미있게 시켜 주셨다. 내가 공을 잡으면 5명이 수비를 하고, 그걸 뚫고 나가는 식의 실전 훈련을 주로 했다. 또 내가 욕심이 많아서 훈련 끝나면 벽에다가 공을 튕기면서 가상의 패스를 받는 식으로 기술 훈련을 더 했다.”

한국에서 기억에 남는 훈련이 또 있나.
“숭의여중, 숭의여고 다니면서 매일 남산을 뛰었다. 알람 같은 것 맞춰 놓지 않아도 칼 같이 새벽 5시면 일어나서 계단을 뛰었다. 그 체력 훈련 덕분에 미국 대학에서도 체력에서는 밀리지 않았던 것 같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이색적이었던 게, 이미 거기는 여자대학팀에도 피지컬 트레이너가 따로 있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체계적으로 시켰다. 나는 현역 선수 때 키는 작지만 근육이 많고 힘에서 밀리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인터뷰] 美대학농구 레전드 이은정 코치의 쓴소리 “팀 훈련 너무 많으면 개인훈련 없어져”

한국 여자농구에서는 최근 ‘테크니션’이 없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팀 훈련량이 지나치게 많은 게 선수에겐 독이 될 수도 있을까.
“(한국 선수들이 프로에서도 합숙을 하며 장시간 훈련한다고 말하자) 오우, 그건 좀…심했다. 프로가 꼭 합숙을 할 필요가 있나. 들어 보니 요즘 한국 학교와 프로팀 훈련은 내가 학생 때보다도 훈련 량이 더 많은 것 같다. 팀 훈련을 너무 많이 하면, 개인 훈련할 시간이 없어진다. 팀 훈련은 적당히 정해진 시간만 딱 하고 끝내야 개인적으로 선수가 자신에게 필요한 걸 연구해서 더 훈련할 수 있다. 나 역시 내 기술과 체력을 발전시킨 건 개인훈련 시간을 통해서였다.”

‘한국에서 지도자 역할을 할 기회를 갖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동안 미국 대학팀에만 있었기 때문에 한국 농구, 그리고 선수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게 단점일 수 있을 텐데.
“그렇다. 나와 동기생인 김화순(전 동주여고 감독)도 그 얘기를 하더라. 하지만 미국에서 한국 여자농구경기 영상과 중계를 봤는데, 농구는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도 요즘 어린 친구들이 휴대폰만 들여다 보고, 팀 스피릿이 약해지는 게 문제인데 그런 부분을 끌어올리는 지도자가 되려고 한다.”

한국 선수들을 가르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있는지.
“나는 대학 졸업 후 스웨덴, 이탈리아에서 뛰다가 은퇴 후 1991년부터 지금의 대학팀에서 코치를 시작했고, 현재 ULM 여자농구팀의 어시스턴트 코치다. 선수 시절 여러 나라를 거치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선수들을 가르칠 때는 기본기, 실전 기술 훈련을 잘 가르치는 걸 좋아한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기본 공격 기술을 배울까 고민하다가 내 이름을 딴 ‘E.J. drill’이라는 기본기 훈련 방식도 따로 만들었다. 지금도 이걸 이용해서 선수들을 가르친다. 한국에서 프로팀을 가르칠 기회가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그런 기회가 없다고 해도 농구 클리닉을 만들어서 한국 선수들을 가르칠 기회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kyo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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