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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의 마니아썰]박세리의 ‘평범으로의 회귀’

2016-07-20 11:55

▲박세리는1998년미국진출후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에서첫우승을거뒀다.사진은2006년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연장전에서우승을확신한박세리가손을들어갤러리의박수에화답하고있는모습니다.박세리가가장좋아하는사진이다.사진=정진직제공(JNA골프)
▲박세리는1998년미국진출후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에서첫우승을거뒀다.사진은2006년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연장전에서우승을확신한박세리가손을들어갤러리의박수에화답하고있는모습니다.박세리가가장좋아하는사진이다.사진=정진직제공(JNA골프)
어릴 적에는 나름 꿈이 있었지만 머리를 박박 밀던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꿈이 사라졌다. 누군가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면 참 난감했다. ‘꿈이라는 게 꼭 있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앞섰다.

‘보이스, 비 엠비셔스!’(Boys, be ambitious)라는 말에는 “소년은 무조건 야망을 가져야하나, 소박한 삶은 안 돼?”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았으면 했다. 그런데 머리가 더 굵어진 다음에야 ‘평범하게 살기’만큼 어려운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평범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으니 더욱 헷갈린다.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살아야 하고, 어떤 자동차를 몰아야 하는지, 연봉은 얼마 이상이 돼야 오늘날 대한민국의 평범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와 동료의 기준이 다르고, 아내의 생각도 다르다.

박세리는 올해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다. 올 1년이 기나긴 은퇴의 과정이다. 1996년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으니 꼭 20년 만이다. 박세리가 두각을 나타낸 건 그보다 4년 앞선 1992년이다. 그해 9월 그는 국내 골프계에 충격을 던지며 등장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박세리가 라일앤스코트 여자오픈에서 원재숙을 연장전 끝에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전에도 아마추어 골퍼들이 프로 무대에서 우승한 적은 있지만 중학생이 우승한 건 처음이었다. 더구나 상대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2관왕이던 당대 간판스타였으니 골프계는 더욱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박세리는 이 우승을 신호탄으로 아마추어 시절 프로 무대에서 이미 6승을 거뒀다.

때 마침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함께 세계화를 외치던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글로벌 스타를 물색했다. 박세리가 낙점됐다. 곧바로 ‘박세리 전담팀’이 꾸려졌다. 분당에 박세리 숙소를 마련하고, 체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삶이 평범과 멀어진 순간이다.

국내 무대를 평정한 박세리는 1998년 미국으로 건너가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더니 곧이어 US여자오픈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맨발의 투혼’에 온 국민이 박수를 보냈다. 그는 한국 선수 최초의 명예의 전당 입회, 한국 선수 최다승 등의 기록을 남기며 ‘골프 여왕’이라 불렸다.

최근 1년 사이 박세리를 만나 인터뷰를 한 게 세 차례다. 지난해 9월에 국내에서 한 번, 올해 1월과 3월 미국에서 두 차례 만났다. 여러 얘기가 오고간 가운데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평범으로의 회귀’다.

그는 “맘 편히 여행 한 번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골프 선수들은 매주 여행을 다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다. 대회가 끝나면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곧바로 공항으로 달려가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게 그들의 일상이다.

직장인이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 그들은 필드라는 삶의 현장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른다. 한가한 여름휴가는 꿈도 못 꾼다. 시즌이 끝난 후에는 여기저기 생채기 난 몸을 수리(?)해야 한다. 박세리는 어깨 관절이 닳아 습관성 탈골이 있다. 그가 얼마나 많이 클럽을 휘둘렀는지 짐작이 간다.

박세리는 지난해 1년 휴식을 취하면서 가족여행의 꿈은 이뤘다. 제주와 부산으로 다녀왔다. 골프로 큰돈을 벌고, 명성도 얻었지만 가족여행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박세리는올시즌을끝으로은퇴를하지만여전히할일이많다.올해당장리우올림픽골프종목여자팀감독을맡았다."이제보통의삶으로돌아가고싶다"고말한박세리는20일미국생활을정리하고귀국했다.어깨의짐을조금은덜었으면한다.사진=한석규제공(JNA골프)
▲박세리는올시즌을끝으로은퇴를하지만여전히할일이많다.올해당장리우올림픽골프종목여자팀감독을맡았다."이제보통의삶으로돌아가고싶다"고말한박세리는20일미국생활을정리하고귀국했다.어깨의짐을조금은덜었으면한다.사진=한석규제공(JNA골프)


박세리는 이제 여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으로 돌아가려 한다. 중학생 시절 프로 무대를 제패한 이후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그는 한국 나이로 따지면 마흔이 된 지금 “다시 보통 사람의 삶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와 함께 ‘트로이카’를 형성했던 박지은과 김미현이 먼저 필드를 떠나 더욱 고독했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결혼과 함께 은퇴를 했다. 후배였던 한희원, 이지영도 그랬다.

박세리는 그러나 여전히 솔로다. 대회장에 가면 모든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우러러보는 영웅이었지만 집에 왔을 때의 혼자라는 허전함이 그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슬럼프 시절 그는 타지의 넓은 집에서 홀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어떻게 쉬는 건지 배우지 못했다”며 원망하기도 했다.

그는 올 초 만난 자리에서 “(시집을) 가고 싶고, 찾고 싶은데, 아직 없다. 그냥 친구처럼 지낼 동반자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올해 올림픽 감독직도 수행해야 하는 등 아직은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박세리지만 그가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에 안착했으면 한다.

물론 평범이라는 게 가장 달성하기 힘든 목표다. 마음과 달리 스스로를 내려놓는 게 어려울 수도 있고, 외부 요건이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20일 귀국했다. 새로운 출발점에 선 그가 이제는 어깨의 짐을 조금 덜었으면 한다. 지금까지 충분했으니까.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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