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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립영화인의 고백 "앎 외면…잠시 부끄럽게 살았다"

[노컷인터뷰] 민영화 민낯 들춰낸 '블랙딜' 제작자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

2014-06-26 19:21

고영재㈜인디플러그대표(노컷뉴스이명진기자)
고영재㈜인디플러그대표(노컷뉴스이명진기자)
독립영화를 제작·배급하고 그 부가판권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회사인 ㈜인디플러그의 고영재(46) 대표는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제작자로 이름높다.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극장에서 29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워낭소리'(2009)를 제작한 이가 바로 그다.

최근 서울 수유동에 있는 인디플러그 사무실에서 만난 고 대표에게 '독립영화의 입지가 갈수록 줄어드는 데 대해 걱정이 크지 않냐'고 묻자 "영화를 산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면 독립영화인은 예비산업인력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18년간 독립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독립영화인 스스로 본인의 계급성을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상황이 이렇든 저렇든 독립영화 하는 사람의 머리는 자기 철학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시대에 그것이 소비되고 유통되는 방식은 철저히 산업 논리에 따른다는 거죠. 산업의 본질은 수익 창출입니다. 대기업이 제작비 100억을 못 믿을 감독에게 투자하느니, 독립영화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감독에게 3, 4억 원을 대주는 것도 그런 이유죠. 착각에 빠지면 안 됩니다. 산업적 측면에서 소비할 감독은 많으니까요."
 

결국 독립영화는 상업영화가 할 수 없는 작업을 통해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고 대표의 지론이다.

제도적으로 민주화가 성숙하지 못했던 1980, 90년대 독립영화는 민주주의, 노동 등 거대담론을 이야기했다. 당시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386세대가 상업영화계에 유입되고, 토종 충무로 자본에서 대기업 자본 위주로 제작 환경이 재편됨에 따라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 자체가 모호해진 지금 '독립영화는 왜 필요한가'라는 물음의 답은 더욱 간절해 보인다.
 
고 대표는 "지금 독립영화의 길은 우리에게 망각을 강요하는 것들에 끈질기게 접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립영화에서 다루는 소재나 이야기가 더이상 특별할 것 없는 상황에서 '내가 독립영화를 왜 봐야 해'라는 관객의 비판을 받아들이고, 독립영화인 개개인이 하나의 주체로서 일상을 차별화된 영상으로 기획하고 설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 대표가 다음달 3일 개봉을 앞둔, 민영화의 민낯을 드러내는 다큐멘터리 '블랙딜'을 제작한 것도 이러한 숙고의 산물이다.
 
어느 독립영화인의 고백 "앎 외면…잠시 부끄럽게 살았다"
"한미FTA로 온나라가 떠들썩하던 2006년 독립영화 감독들과 함께 '한미FTA 저지 독립영화 실천단'을 꾸리고 단장을 맡았었죠. 고백컨대 나름의 논리를 갖고 부당함을 알리려고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어요. 논쟁의 현장에는 기록을 남기려는 우리 측 카메라가 항상 돌았고, 그 영상은 여러 차례 지상파 방송을 통해 전국에 퍼졌죠. 8년이 지난 지금 한미FTA가 비준 되고 이제는 일본 중국하고도 한다는데 더이상 회자가 안 됩니다. 저 역시 익숙해져 있더군요."
 
고 대표는 어느 날부터인지 '8년 전 소수에게 돈과 권력이 집중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던 너는 뭐였냐'는 자성을 여러 모로 하게 됐고, 천박한 자본주의에 반대하면서도 그 안에서 '잘 되고 싶은' 욕망을 지닌 모순된 자신을 발견하고는 커다란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전했다.

급기야 최근 세월호 참사를 접하고는 "어른들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아이들에게 몹시도 부끄러운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인 데 대해 책임지지 못할 말은 아예 입밖에 내지 못하게 된 듯하다"고도 했다.
 
"한국 사회 천박한 자본주의의 실체와 제 모습을 반추해 보는 영화를 기획하고 싶다는 욕구는 2012년부터 끓어올랐어요. 제가 앞으로 제작과 프로듀싱을 맡게 될 작품 역시 이러한 주제의식을 바탕에 깔아야 꾸준히 성장할 것 같다는 확신도 생겼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 블랙딜은 그러한 의지를 담은 선언인 셈이죠."
 
- 독립영화계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대학 연극영화과를 가려 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정치외교를 전공하게 됐다. 그래도 영화는 많이 봤다. 그때는 (민주화운동을 하느라) 강의실보다 길거리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뭘 할까' 고민했다. 원래부터 기업 CEO가 쓴 자서전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기에 기업에 취업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열아홉 살에 원서 썼던 기분으로 영화에 눈을 돌렸다. 다시 영화를 한다면 당연히 독립영화를 해야지 생각했고, 노동자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저에게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과제인 앎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 '독립영화계의 스타 PD'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인지는 하지만 의식은 하지 않는다. 2, 3년 전에는 의식도 했다. (웃음) 블랙딜은 극장 개봉을 목표로 제작된 작품으로는 5년 만이다. 최근 4, 5년 동안에는 다양한 제안을 하는 분들의 일들을 챙겨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주변도 살펴야 했다. 그러면서 하나 꽂힌 것에 집중하던 초심을 잠시 잊었던 듯하다. 나 자신부터 앎과 삶이,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발로 뛰고 해야 영화 만드는 맛을 느끼는 타입인데, 기획·제작·프로듀서·투자·사운드에까지 제 이름을 올린 블랙딜은 그렇게 속에 차오른 것들을 발산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앞으로 고영재라는 이름이 들어간 영화에서는 상위 1%에 부가 집중되고 빈곤층이 늘어가는 현재 한국 사회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꼭 들어갈 것이다."
 
- 워낭소리 개봉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았고, 최근 블랙딜 제작보고회 때도 "대통령에게 먼저 보여 주고 싶다"고 했는데.
 
"워낭소리 때는 청와대에서 극장까지 잡아뒀더라. 제가 원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그곳에 가지 않았다. 그분 옆에서 영화 보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일 테니까. 이번 블랙딜의 경우에는 시사 문제를 다룬 영화 제작자의 심정이 모두 그렇지 않을까. 왜 국민들이 정부의 잘못된 행태를 성토하다가 '청와대로 갑시다'라고 외치겠는가. 같은 의미였다."
 
- 왜 지금 시점에서 7개국(한국 포함) 민영화 탐방기인가.
 
"사실 한국은 민영화의 후발주자다. 사례라고 해 봤자 석유공사, 한국통신이 넘어간 것 정도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상황만을 찍는다면 민영화의 폐해를 알리는 데 설득력이 없을 것 같았다."

고영재㈜인디플러그대표(노컷뉴스이명진기자)
고영재㈜인디플러그대표(노컷뉴스이명진기자)
- 연출을 맡은 이훈규 감독은 적임자로 여겨지더라.

"해외에 나가야 하는데, 훈규 외에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 후배인데다 한미FTA 저지 운동 때도 함께했고 꾸준히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을 만들어 온 친구다. 언젠가는 함께 작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터였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취재·편집 역량을 갖춘데다 속된 말로 저돌적인 '똘끼'도 충만했기에 그쪽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었다."
 
- 기존 진지한 다큐와 달리 유머도 있고 무엇보다 감정을 건드리는 점이 인상적이다.
 
"첫 미팅 때 훈규랑 공유한 게 절대로 수치로 대변되는 차가운 논리를 앞세워 만들지는 말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각국에서 민영화를 반대했던 사람이 아니라 적극 추진했던 사람을 만났고, 그로 인해 삶의 변화를 겪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데 주력했다. 이훈규 감독이 논리로 맞서는 것을 잘하는 친구인데 본인 스스로도 이번에는 누그러뜨리고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을 고만하더라. 그런 면에서 편집도 위트 있게 가져간 측면이 있다."
 
- 민영화 사례로 든 영국 칠레 아르헨티나 일본 프랑스 독일은 어떻게 선정했나.
 
"원래 계획은 남미에서 3주, 미국에서 2주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먼저 이미 많이 다뤄졌고, 원하던 취재원 섭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무엇보다 결정타는 돈이 없었다. (웃음)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차로 1300만 원이 모였는데 남미 추진비용으로도 모자랐다. 애초 일본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철도 민영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일본 홋카이도의 사례가 흥미로워 찾게 됐다."
 
- 제작비는 어떻게 조달했는지.
 
"제작비가 2억 7000만 원 들었는데, 1억은 투자를 받은 것이고 1억은 회사 카드 등을 활용해 자체 조달했고 7000만 원은 세 차례에 걸친 크라우드 펀딩으로 메웠다. 빠듯했지만 원칙은 있었다. 기획 구성안이 제대로 안 나오면 영화를 엎을 마음이었다. 우연성에 기대어 무작정 시작하면 안 된다는 각오였다. 이러한 체계가 독립영화계에서는 전무한 상황에서 한 번은 보여 주고 싶었다. 성급하게 시작하지 않고 완벽하게 기획을 해서 정해진 기간 안에 끝내는, 철저한 예상과 예측으로 영화가 완성될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
 
- 민영화의 핵심은 뭐라고 보나.
 
"영화 제목을 블랙딜, 곧 검은 거래로 정할 때는 학계까지 포함시켜 관료, 기업과의 민영화 삼각 커넥션을 캐려는 의도가 있었는데, 학계쪽 물증 확보가 잘 안 됐다. 결국 민영화는 주체인 시민,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본다. 한 번 잘못된 민영화가 이뤄지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을 우리 영화는 상기시키고 있다. 한 번 민영화를 하면 계약이 끝날 때까지 20~30년을 기다려야 하니, 이러한 악순환의 구조를 깨려면 개개인의 각성을 통한 성숙된 시민의식과 민주주의가 동반되지 않으면 어렵다. 이는 '나'의 문제로 귀결된다. 블랙딜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 영화다."
 
- 독립영화로서 극장을 잡기 어려운 현실에서 공동체 상영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대안이 그것밖에 없다. 그렇다고 영화 개봉도 안하고 다운로드를 풀 수는 없지 않나. 극장은 갑이고 우리는 을인 상황에서 기댈 곳은 네트워크뿐이다. 전국이 다 극장인 것이다. 장소와 장비에 따라 화질도 사운드도 천차만별이지만,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반응이 빠르게 나온다는 점은 공동체 상영의 매력이다. 우리나라 중소도시에는 극장 없는 곳도 많다. 그곳에 사는 분들을 포함해 많은 분들에게 우리 영화를 보여드려야 한다는 마음이다. 공동체 상영을 거점으로 입소문이 나면 극장 상영도 확대될 거라 본다."
 
- 독립영화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제는 '나 독립영화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대다수 젊은 친구들은 상업영화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공부한다. 극영화의 경우 독립영화는 상업영화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여기게 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주제의식 측면에서 여전히 독립영화 진영에 요청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적재적소에서 이를 기획하고 묶어냄으로써 실천의 동력으로 내놓는 게릴라전을 펼쳐야 한다. 여기서 관건은 안정된 투자를 얻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그나마 현재 기부 개념으로 이뤄지는 영화 관련 크라우드 펀딩을 투자로 전환하는 지원법이 빨리 통과돼야 한다. 능력 있는 독립영화인들을 지원해 줄 개미투자자들의 도움이 절실하다."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jinuk@nocu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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