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응답하라 1990] 찬스의 달인, '영감' 김영직의 추억

두 번의 한국시리즈에서 유독 찬스에 강한 모습 선보여

2014-02-15 19:23

▲박종훈감독재임시절의김영직수석코치(사진우측).사진│LG트윈스
▲박종훈감독재임시절의김영직수석코치(사진우측).사진│LG트윈스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1990년대 한국 프로야구는 ‘서울 야구팬들의 한(限)’을 푸는 것으로 시작됐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충청, 영남, 호남지역의 팀들이 페넌트레이스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해 왔던 반면, 1982년 이후 서울팀은 1989년까지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하기 못했기 때문이었다(전/후기리그 통합우승 포함). 그나마 1983년 후반기 리그에서 서울 연고인 MBC 청룡이 1위를 차지했지만, 그 해 열린 한국시리즈에서는 이렇다 할 힘 한 번 써보지 못했다. 전반기 리그 우승팀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전신)가 ‘왕조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우승을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MBC는 4차전에서 1무승부만을 기록했을 뿐, 7전 4선승제로 열렸던 한국시리즈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쓸쓸이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이후 MBC를 비롯하여 충청에서 서울로 연고를 옮긴 OB 베어스(두산 베어스 전신) 모두 우승과는 이렇다 할 인연이 없었다. 그러는 한편, 럭키금성(LG그룹 전신)도 1990년 시작과 함께 MBC 청룡을 완전 인수하는 것으로 프로야구단에 뛰어 들었다. 선수단 구성은 변한 것이 없었으나, 당시 럭키금성이 LG 트윈스를 출범시키면서 강조했던 것은 하나였다. 구본무 당시 구단주가 직접 ‘구단 사장은 현장에 대해 일체 관여하지 말고, 오히려 적극 지원할 것’을 주문한 것에서 비롯됐다. 이 때문인지, 사공이 많던 MBC는 LG로 유니폼을 바꿔 입자마자 그 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찬스의 달인, ‘대타’ 김영직의 추억

1990년 한국시리즈는 그라운드 밖에서도 상당히 관심을 가졌던 경기였다. 삼성과 럭키금성 모두 대한민국 재계 랭킹을 다투는 대기업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이기고 지느냐에 여부는 곧바로 자존심의 문제로 이어졌다. 그래서 삼성이 4연패로 시리즈 재패에 실패하자 정동진 감독을 즉각 해임한 것도 당연한 순서였다.

그러나 당시 삼성에게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1차전 0-13 패배 이후 2차전은 9회 말 2사까지 삼성이 2-1로 앞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고졸 2년생 김상엽의 겁 없는 투구에 간판타자 박흥식, 김상훈 등이 맥없이 물러나자 LG 역시 3차전을 기대하는 듯한 눈치였다. 그러나 9회 말 2사 3루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인물이 김상엽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 적시타를 터뜨렸다. 정규시즌 내내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던 이의 활약에 그라운드가 들썩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주인공은 ‘영감’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김영직이었다. 정규시즌 성적은 신통치 않았지만, 백인천 감독은 유난히 찬스에 강했던 그를 과감하게 4번에 기용했는데, 이것이 그대로 적중했다. 결국 승부를 연장까지 가져간 LG는 11회 말 공격서 또 다시 김영직이 1사 만루서 상대 투수 정윤수로부터 밀어내기 볼넷을 골라냈다. 그렇게 찬스에 강했던 ‘대타 전문’ 김영직은 나이 서른에 뒤늦게나마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달콤함에 빠질 수 있었다.

1990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의 활약을 시작으로 그는 조금씩 출장 기회를 늘려갔다. 비록 현역 시절에는 단 한 번도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좀처럼 삼진을 당하지 않는 빼어난 선구안을 보여주며 LG 타선을 이끌었다. 이후 다시 그의 진가를 확인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었다. 34세의 나이에 맞이했던 한국시리즈에서 또 다시 등장하며 해결사다운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4-2로 리드 당하고 있던 7회 초 공격서 추격을 알리는 1타점 적시타를 기록하며 큰 경기에 강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후 김영직은 유지현의 적시타 때 상대 유격수 염경엽의 악송구를 틈타 동점 득점까지 기록했다.

1995년은 김영직의 현역시절 마지막 해였다. 그러나 마지막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31경기에서 0.289의 타율을 기록하는 등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그는 ‘찬스에 강한 대타 전문요원’으로 LG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였다.

더욱 대단한 것은 1990년 이후 가장 오랫동안 LG 유니폼을 입었던 이가 바로 김영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은퇴 이후 수비코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지도자 수업을 받았는데, 1군과 2군을 오가면서도 LG 유니폼만 입었다. 지난해 잔류책임 코치를 사임하기 전까지 그는 2군 감독, 1군 수석코치, 타격코치 등을 두루 역임했다. 23년간 선수/지도자로서 LG 유니폼을 입었던 이는 김영직이 유일하다.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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