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조국이 등 떠민 스포츠 스타, 야구계도 예외 없다

어른들의 노름에 어린 선수들만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 받아

2014-02-14 00:36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에이스 이상화가 금메달을 획득한 것을 시작으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선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탓인지, 박근혜 대통령도 이례적으로 체육계에 대해 업무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연은 이러했다. 지난 12일, 서울 예술 대학교에서 열린 교육부/문화 체육 관광부 신년 업무보고 자리에서 러시아 귀화를 선택한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왜 국내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선수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지적한 데에서 시작했다. 그러는 한편, ‘선수들이 실력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심판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함은 물론, ‘체육비리와 관련해서는 반드시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즉, 상식이 기행으로 통하는 대한 체육회의 부조리를 근절시키자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매우 합리적이면서도 올바른 지적이다. 특히, 올바른 체육 행정 확립을 위해서라도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문제는 해결해야 함이 옳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 해도 ‘제2의 안현수/추성훈’이 배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체육 영재 관리와 정당한 스포츠 행정 절차 확립은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등 떠민 스포츠 스타, ‘야구계도 예외 아냐’

굳이 앞선 두 선수의 예가 아니더라도 등 떠밀려 부득이하게 이민이나 국적 변경, 유학의 방법으로 국내를 떠난 스포츠 영재들은 의외로 많다. 이들 중에는 해당 종목에서 국가대표로 뽑힐 가능성이 컸던 선수도 있었다. 실제로 아마추어 시절에는 태극 마크를 달고 국제무대에 섰던 이도 있었다. 이는 야구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1998년, 대한야구협회로부터 무기한 출전 정지 처분을 받은 백차승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해 9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그는 2차 리그 타이완전에서 5이닝 동안 3실점하며 비교적 선전했으나, 팔꿈치가 아프다는 이유로 자진 강판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반발한 백차승은 감독의 1루 수비 지시마저 무시한 채 돌연 더그아웃으로 들어가 버렸다. 실제로 그는 이듬해 시애틀 메리너스와 계약을 맺은 후 팔꿈치 수술을 받아 ‘성치 않은 몸’으로 대회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러나 몸이 성치 않았던 그에게 대한야구협회는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으로 응수(?)하며 국내에서 야구 하지 말 것을 경고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조국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을까. 그는 2005년에 미국 시민권을 얻으며 선수 생활을 지속했다. 그리고 2004년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2008시즌까지 통산 16승 18패 평균자책점 4.83을 마크했다.

더 큰 문제는 야구계가 국내 선수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 선수들’에 대한 높은 장벽을 구축해 놓고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데에 있다. 앞선 백차승과 마찬가지로 최근 대한야구협회로부터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김성민(현 후쿠오카 경제대)도 비슷한 사례였다. 물론 김성민의 경우, 고교 3학년 진학 이전에 해외 구단과 계약을 맺은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댄 듀켓 볼티모어 오리올스 부사장을 필두로 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선수 본인을 비롯하여 학부형까지 부추기면서 계약을 촉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결국, 볼티모어 국제부 스카우트 팀이 대한야구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회에 발길을 들여 놓지 못하면서 김성민과의 계약도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이기적인 해외 구단의 행보에 ‘좌완 속구투수 유망주’ 한 명만 잃어버린 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속사정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대한야구협회는 재심 여부도 고민하지 않고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렇기 때문에, 김성민이 일본으로 눈을 돌린 것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되려 후쿠오카 경제대학에서는 김성민에게 전 학년 장학금 제공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설령 징계가 풀렸다 해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일단, 해외로 나갔다 온 선수들은 2년간 신인지명 회의에 참가할 수 없다는 규정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규정으로 인하여 운동을 포기하는 야구 영재들이 적지 않다는 점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일본 유학 이후 고시엔 본선무대까지 밟았던 부산고 출신 김동민도 일본 독립리그(서울 해치) 등을 전전했지만, 끝내 이 규정에 발목이 잡혀 야구를 포기했다.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는 재능이 뛰어나도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 되려 자신의 재능만 믿다가 프로스포츠에서 낭패를 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스포츠에는 간혹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천재들이 나타나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고, 이러한 이들에게 행정을 담당하는 ‘어른’들은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 스포츠에서 ‘천재’들은 자비를 들여 늘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선수들이 국외로 빠져나갈 때마다 늘 ‘사후약방문’을 외쳤지만, 정작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나온 예는 거의 없었다. 부디 이번에는 ‘러시아 국적의 빅토르 안’이 아닌, ‘재 러시아 교포 선수 안현수’를 응원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반영한 이번 동계 올림픽 사례를 반드시 참고하여 체육회 전체의 각성과 구체적인 대안이 마련되고 실천되기를 기원해 본다.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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