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응답하라 1990]추억의 그 이름, 'LG 할아버지'

구부정한 자세로 선글라스 끼며 응원 주도, '정정함 과시'

2014-01-28 00:37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지난해 한화 이글스 사령탑으로 부임하여 팀을 이끈 김응룡 감독은 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했지만, 근본부터 무너진 팀을 추스르는 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마운드에서는 확실한 선발 투수가 한 명도 없었고, 타선 역시 김태균이 중심 타선에서 ‘테이블 세터 역할’까지 수행해야 하는 등 전반적으로 전력이 고르지 못했다. 결국, 한화는 9개 구단 체제에서 최초로 최하위 자리에 오르며 체면을 구겨야 했다.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야구장을 찾은 한화 팬들의 팬심(心)은 타 구단 못지않았다. 이에 김응룡 감독은 “전 세계에서 우리(한화) 팬들이 가장 자비롭다”라는 말로 미안함을 대신하기도 했다. 또한, 한화가 연패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눈물로 끝까지 지켜봤던 이들(이른바 ‘한화 눈물녀’) 중 일부는 시구/시타자로 선정되어 본의 아니게 그라운드에 나서기도 했다. 이렇듯 선수들을 움직이는 힘은 팬들의 존재에 있고, 팬들을 얼마나 그라운드의 주인으로 대접하느냐에 따라서 명문으로 거듭나느냐가 결정나는 셈이다.

1990년대 응원단상을 빛냈던 ‘LG 할아버지’의 추억

그러나 이러한 팬심(心)은 1990년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인터넷 예매가 없었던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표를 구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야구 열기가 대단했다. 주말 오후 2시 경기를 보기 위해서는 아침 10시에 야구장을 나서야 겨우 표를 구할 정도였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지역색도 관중석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던 것이 1990년대 야구장 풍경이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같은 ‘팬’ 입장에서 유명세를 탔던 인물이 있다. 구부정한 자세로 매번 관중석에 올라 치어리더들과 같이 응원을 주도했던, 이른바 ‘LG 할아버지’가 그 주인공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정한 모습으로 단상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LG 할아버지는 웬만한 선수들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어른’이었다.

필자가 처음 LG 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20년 전 TV 중계를 통해서였다. 케이블 TV가 없었던 당시에는 공중파로도 프로야구가 생중계되던 시기였다. 누구나 접하기 쉬웠던 프로야구 중계에서 응원단장 못지않은 정정함을 과시했던 ‘LG 할아버지’의 존재는 분명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선글라스를 끼고 호루라기를 불면서 단상에서 치어리더들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은 분명 1990년대에도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이러한 ‘특별한 팬들’의 존재 속에서 LG는 1990년과 1994년,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랬기에 1997년경 들려왔던 ‘LG 할아버지’의 별세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표현했던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LG 할아버지 이후에는 이른바 ‘달마 아저씨’가 등장하여 그라운드 안팎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며 LG와 관련한 각종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특별한 팬’은 서울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전신) 왕조 탄생에는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의 등장이 김응룡 감독 특유의 ‘지도력’과 결부된 결과이기도 했지만, 관중석에서도 이들을 끊임없이 응원하는 팬들의 존재 역시 늘 빛이 났다. 특히, 1990년대 해태의 경기가 중계되는 날에는 어김없이 ‘해태 아줌마’가 등장하여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녀의 응원 도구는 사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한복을 입은 채 꽃술을 흔들며 응원전을 펼친 것에 불과했기 때문. 그러나 해태 측 응원석의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 해태 아줌마가 응원석에 등장하면, 팬들은 성의를 다해 그녀를 따랐다. 물론 2000년대 이후 해태 아줌마의 자취는 슬그머니 응원석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야구장 근처에서 생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그녀의 본업은 행상. 경기 전에는 경기장 입구 쪽에서 각종 음료나 응원도구 등을 판매하며, 경기 시작 후에는 간혹 응원석에 자주 나타나 여전히 KIA를 응원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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