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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골프]노장의 우승을 지켜보며

44세 켄 듀크의 트레블러스 제패…고목 나무에 꽃 피다

2013-06-25 10:57

[마니아리포트 문상열 기자]지난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과 AT&T 페블비치 내셔널 프로-암 대회에서 켄 듀크를 처음 봤다. 한국 선수들과 동반플레이를 하기에 관심 있게 지켜봤다. 늙수그레한 모습이 미디어가이드를 찾지 않았으면 50세쯤으로 착각했을 터다. 시니어투어에서 활동해도 되는 선수로 보였다. 허리가 약간 구부정해 더 늙어 보이기도 했다.

켄 듀크를 기억하는 것은 40대 중반의 나이도 그랬지만 플레이가 너무 스피드했기 때문이다. 볼 뒤에서 무엇을 칠 것인지 생각한 다음에 얼라이먼트를 하면 곧바로 스윙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한국(계) 선수들 가운데 찰리 위(위창수), 케빈 나(나상욱)는 스피드가 매우 느린 선수 그룹에 속한다. 사실 갤러리들도 짜증날 정도로 느리다.

지난 24일(한국시간)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최종라운드를 지켜보면서 듀크의 우승을 고대했다. 저 나이(44세 4개월 25일)에 아직도 PGA 투어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는 것에 심정적으로 그의 우승을 기대했던 이유다. 최종 18번홀에서 그린 밖 세 번째 샷을 홀에 붙여 파로 마감하고 12언더파 선두로 클럽하우스를 향할 때 “우승했구나”라고 짐작했다. 물론 TPC 리버 하이랜즈(파70. 6,841야드)의 18번홀(파4 444야드)이 가장 쉬운 홀 가운데 하나라는 게 꺼림칙하기는 했다.

1타 뒤진 크리스 스트라우드(31)가 최종홀을 마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버바 왓슨과 한 조를 이룬 스트라우드의 18전홀 티샷은 페어웨이의 카트 패스를 넘어 90야드 언저리에 떨어졌다. 16번홀(파3)에서 어처구니없는 트리플보기로 우승권에서 멀어진 왓슨의 드라이브샷은 더 길었다. 세컨드 샷을 웨지로 치는 터라 깃대에 붙여 버디할 확률이 높았다. 중계를 한 CBS의 버논 랭퀘스트 캐스터도 버디를 할 수 있는 거리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스트라우드, 왓슨 나란히 세컨드샷이 그린을 맞고 튀어 뒤로 굴렀다. 그린이 무척 딱딱해 볼이 서지를 않았다.

듀크는 클럽하우스에서 스트라우드, 왓슨 조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왓슨이 퍼터로 홀에 붙여 파로 마감했다. 10언더파. 이어 한 타 뒤진 스트라우드는 퍼터를 잡지 않고 웨지로 승부를 걸었다. 거리가 있어 버디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볼은 적당한 스피드로 구르며 홀로 빨려 들어갔다. 버논 랭퀘스트는 “샷 오브 더 토너먼트”라며 “최고의 샷을 스트라우드가 결정적인 상황에서 날렸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생애 첫 우승을 눈앞에 둔 듀크는 애써 감정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불길함을 감출 수 없었다.

44세의 듀크는 31세의 스트라우드와 연장전을 벌이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어 우선 비거리가 큰 차이가 나고, 체력으로 뒷받침되는 집중력에서 젊은 선수에게 처진다. 기자는 스트라우드의 어프로치 샷이 빨려 들어가면서 연장전에 돌입할 때 2009년 턴베리 브리티시오픈에서 노장 톰 왓슨과 스튜워트 싱크의 연장전이 떠올랐다. 왓슨은 마지막 72번째 홀에서 ‘파’만 했으면 우승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젊은 싱크에게 연장 3홀에서 우승트로피를 헌납했다.

듀크와 스트라우드의 연장 첫 번째 홀. 드라이브의 거리가 확연하게 차이 났다. 스트라우드의 티샷은 홀까지 97야드 남기고 떨어졌다. 하지만 듀크는 티샷을 잡아당겨 왼쪽 벙커를 지나 깊숙한 러프에 빠졌다. 남은 거리는 157야드. 스트라우드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듀크의 세컨드샷은 그린 앞을 때리고 온그린됐다. 위기에서 터진 절묘한 샷이었다. 버디 기회를 잡은 스트라우드는 웨지를 꺼냈다. 너무 여유가 있었는지 그린 앞 1야드가 모자라 벙커에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세이브로 둘은 두 번째 연장 홀로 돌아갔다.

TPC 리버 하이랜즈는 17번, 18번 코스가 갤러리들이 이동하기 어려워 18번홀에서만 연속 연장전을 벌였다. 두 번째 티샷도 스트라우드는 거의 같은 지점에 볼을 떨어뜨렸다. 위치는 첫 번째보다 더 좋았다. 듀크의 티샷도 이번에는 페어웨이를 타고 갔다. 남은 거리는 125야드. 뒤에서 그린을 쳐다 본 듀크의 샷은 그린을 맞고 홀 1m에 바짝 붙었다. 심리적 부담감을 느낀 스트라우드도 그린에 올렸지만 거리가 멀었다. 버디 퍼팅은 홀 앞에서 약간 휘며 파. 반대편에서 볼을 한참 지켜본 듀크는 퍼팅을 하자마자 우승을 예감한 듯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PGA 투어 187회 출전 만에 거둔 우승이었다. 고목나무에 꽃이 피는 순간이었다. 로스앤젤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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