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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평야 골프종주기]<하>눌제 그린을 향해

2013-05-10 17:53

[호남평야 골프종주기]<하>눌제 그린을 향해
[마니아리포트 김세영]드디어 호남평야 논두렁 골프의 마지막 날이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하늘은 맑았다. 남은 구간은 약 10km에 불과했다. 더구나 일직선으로 뻗은 평야에서 치는 거라 큰 부담은 없었다.

▲직선 주로를 내달리다=전날 5번 아이언으로 거인을 무찔렀던 부안 미곡처리장에서부터 시작했다. 첫 샷에 7번 아이언을 잡았다. 전봇대 두 칸 반 거리를 날아갔다. 얼추 125m 거리였다. 평소 골프장에서 7번 아이언으로 140m 정도를 날리는 것에 비하면 짧지만 런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차이는 없었다.

7번 아이언으로 연거푸 세 번의 샷을 날리며 몸을 푼 후 5번 아이언을 선택했다. 이제는 전봇대 세 칸의 거리를 날아갔다. 150m다. 볼이 날아간 방향과 거리를 알고 있으니 볼을 찾는 것도 훨씬 수월했다. 1시간 30분 만에 얼추 5km 거리를 이동했다. 이전 이틀 동안에는 엄두도 못 내던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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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에서부터 보이던 동네 뒷산도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내가 사는 전북 정읍 고부의 뒷산은 두승산이다. 해발 444m인 이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평지돌출’ 형이라 중턱까지만 오르더라도 멀리 서해 바다와 김제, 부안 일대까지 보인다. 둘째날 김제 대창리 평야에서부터 두승산은 보이기 시작했다.

▲다리는 아프고 샷은 망가지고 = 마지막 날은 중간에 점심을 먹는 것도 생략하기로 했다. 그 시간을 절약해 조금이라도 일찍 라운드를 끝내기로 한 것이다. 대신 간간이 초콜릿을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했다.

오전 11시가 넘어 서자 서서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스윙에 방해되는 두꺼운 점퍼를 벗은 터라 조금씩 추위가 몰려왔다. 그래도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점심을 조금 넘은 시각. 오른쪽 다리 종아리 근육이 당겨오기 시작했다. 질퍽거리는 논을 지난 온 후에는 체력적인 소모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린을 2km 정도 남겨둔 지점부터는 조금씩 힘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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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은 갈수록 망가졌다. 150m를 날아가던 샷은 어찌된 일인지 100m 밖에 나가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7번 아이언으로 바꿨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티로 사용하는 벼 그루터기가 너무 높은 영향도 있었지만 힘이 떨어지면서 스윙 역시 망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747번과 710번 지방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을 얼마 안 남겨 뒀을 때는 한 번에 갈 거리를 무려 세 번의 샷으로 이동했다.

▲도로 위로 샷 날리기 = 이번 호남평야 논두렁골프의 마지막 ‘특별 샷’ 이벤트는 내가 사는 전북 정읍 고부를 지나는 710번 지방도로 위를 향해 샷을 날리는 것이었다. 앞서 두 차례는 만경강과 동진강 너머로 샷을 날렸다면 이번에는 도로 위를 건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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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도로 위를 가로질러 골프볼을 날린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 710번 지방도로의 일부 구간은 원래 눌제(訥堤)라는 제방이었다. 눌제는 익산의 황등제(黃登堤), 김제의 벽골제(碧骨堤)와 더불어 호남 삼호(三湖) 중 하나였다. 호남이나 호서 지방의 명칭도 여기서 비롯됐다. 눌제는 1873년에 폐지되었으나 당시 제방의 길이는 1.5㎞, 둘레는 16㎞였다.

눌제 주변 지역에서 기원전 2~3세기경으로 추정되는 볍씨 자국이 있는 토기편이 출토돼 이 지방을 우리나라 도작문화의 발상지라 할 수 있다. 눌제는 또한 제방의 효시이기도 하다. 조선 중엽의 실학자 유형원은 “이 삼제(눌제, 황등제, 벽골제)에 저수를 해놓으면 노령 이상은 영원히 흉년이 없다. 가히 중국의 곡창인 소주와 항주에 견줄 만하다”고 했다.

과거의 영화(榮華)는 오간데 없고, 농촌은 지금 황폐화되다시피 했다. 농사를 짓고 있는 나로서는 농업이 과거의 영광을 찾을 수야 없겠지만 조금은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5번 아이언으로 눌제를 가로 질러 날린 샷에 이런 작은 소망을 담았다.

▲한 무리 하얀 새의 축하비행 = 길 건너편 논으로 와서 그린을 향한 마지막 여정을 이어 나갔다. 그린을 약 300m 앞둔 지점이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지난 2박3일간의 시간이 잠시 필름처럼 흘러 지나갔다.

이번 골프여정을 시작하기 하루 전날 그린은 미리 만들어놓고 떠났다. 논바닥을 보온덮개로 깔아 그린으로 삼고, 그린 가운데는 삽으로 흙을 파낸 후 그 안에 철로 된 원통을 박았다. 깃대는 집 뒷밭의 대나무를 잘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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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샷이 신통치 않아 그린에 한참 못 미쳤다. 뒷바람이 부는 데다 샷이 길면 그린 뒤편 작은 수로에 볼이 빠질 위험이 있어 세 번째 샷은 4분의 3 크기의 스윙으로 했다. 하지만 역시 짧았다. 마지막 30m의 어프로치 샷도 그린에 올리지 못했다. 그곳에서 52도 웨지로 칩샷을 한 후 2퍼트로 홀아웃을 했다.

사흘간의 기나긴 장정을 끝낸 그 순간 친구와 얼싸 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잠시 후 고개를 돌리니 거짓말처럼 한 무리의 하얀 새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마치 수고했다며 축하비행을 하는 듯했다. 난 “저기 흰 새들 좀 봐”라고 외쳤고, 옆에 있던 사진기자는 그걸 렌즈에 담았다. 그렇게 호남평야 논두렁골프는 막을 내렸다.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골프치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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