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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부 아닌 탁월한 예술인, 이하늬가 그린 새로운 '장녹수'

[노컷 인터뷰] '역적' 장녹수 역 배우 이하늬 ①

2017-05-30 06:00

요부 아닌 탁월한 예술인, 이하늬가 그린 새로운 '장녹수'
사극은 현대극에 비해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은 장르다. '존재하던 사실'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최소한 '틀림' 없이 구현하려면 꼼꼼한 고증이 뒤따라야 한다. 더구나 이미 웬만한 시대는 시청자와 만난 적이 있기 때문에 본전만 뽑아도 다행이라는 소리ㄹㅡㄷ 듣는 게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MBC 월화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은 또 하나의 도전을 한 작품이었다. 허균의 소설 속 주인공으로 알고 있는 홍길동이 아닌, 조선 연산군 시절 있었던 동명의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앞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각각 폭군, 요부로만 묘사됐던 연산군과 장녹수를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내고자 한 것도 빠질 수 없다.

기생으로 핍박받으며 살면서 권력욕을 키우게 된, 탁월한 예술가. '역적'에서 표현하고자 한 장녹수의 모습이었다. 화려한 외모에, 국악을 전공해 다양한 악기를 다룰 줄 알고 춤에도 능한 배우 이하늬가 캐스팅되었을 때, '꼭 맞는 옷을 입었다'며 높은 기대를 모은 까닭이다. 본인의 각오대로, 이하늬는 '예인' 장녹수를 '맞춤'하게 연기하며 호평을 받았다.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하늬를 만났다. 새벽 4시에 울리는 전화를 받고 용인 드라미아로 향해야 할 것 같다며 웃는 그는 아직도 '역적'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 언니, 엄마, 친구였던 월하매가 돌아오는 엔딩에 '눈물'

'역적'은 마지막회에서 14.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의 시청률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종영했다. '피고인', '귓속말' 등 막강한 상대와 겨뤄오면서도 30회 내내 '작품성'은 놓지 않았다는 호평도 나왔다. 이하늬는 "일단 기분이 좋다. 잘, 무사히,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녹수를 연기하면서 그는 가채 때문에 적잖은 고생을 했다. 말 그대로 '눈이 쌓이는 것 같은' 고생이었다. "3달 정도, (회차가) 20부 넘어가니까 (가채를) 엊기만 해도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게 되더라. 원래 디스크 기운도 있고 일자목이어서 쉬는 날에는 무조건 재활 치료를 받았다"고 털어놓으면서도 이하늬는 "그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던 작품"이라고 '역적'을 치켜세웠다.

그가 연기한 녹수는 마지막회에서 분노한 민중들의 돌을 맞고 죽는다. 반란으로 인해 궁에 머무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한 녹수는 열정적인 춤으로 이별을 말했다. 비극을 앞둔 상황이지만 현실의 암울함에 매이지 않고 부러 밝은 표정을 유지했다.

요부 아닌 탁월한 예술인, 이하늬가 그린 새로운 '장녹수'
이하늬는 "100배는 더 열심히 췄는데 그것밖에 안 나왔다"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엔딩은 진만 감독(김진만 감독)님의 신의 한 수였다"며 다른 이에게 공을 돌렸다. 결말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고백했다.

"되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이 월하매(황석적 분)가 돌아오는 거였다. 제가 그 전에도 제 현장은 월하매가 있고 없고로 분위기가 나뉜다고 했을 정도로 너무 비타민 같은 존재였다. 궁 안에서 그 장면을 찍을 때도 정말 너무 허전했다. 녹수는 월하매가 없어질 때 무슨 기분일까 하는 생각에. 월하매는 녹수를 세상 밖으로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이자 비밀창고였을 것 같다. 정화작용을 하는 유일한 사람, 엄마이자 언니이자 친구인 그 사람이 없다면 어떤 것으로도 메꿀 수 없었을 것 같다. 잠도 못 자고. 그래서 월하매가 돌아오는 장면 찍을 때 실제로 너무 눈물이 많이 났다."

서울대 국악과 동문인 황석정과 이전에도 인연이 있었느냐는 물음에 "선배님이라는 건 알았는데 이번에 작품하면서 알았다. 만나고 나서 진짜 너무너무 반했다.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유쾌한 분"이라고 말했다.

◇ 녹수를 만나기 전부터 녹수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극중 인물을 더 살아있는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이하늬는 소리와 춤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다. 돌아보면, 신기하게도 그 작업은 녹수를 만나기 전부터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이라는 게 진짜 재미있는 것 같다. 제가 (작년에) '판 스틸러'(국악을 친근하게 만들고 국악을 음악판의 주류로 올려보겠다는 포부로 만들어진 Mnet 예능)라는 프로그램을 했다.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국악이 대중화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주제 선정부터 머리가 뽑힐 정도로 몰두해, 작품하는 것 10배 정도의 에너지를 쏟고 제작진의 마음이 되어서 했었다. '역적' 첫 미팅도 그 프로를 하고 있을 때다. (지금은) '판 스틸러'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자, 감독님이 '그럼 일단 예인으로 살고 있어. 1월에 요이땅 하면 그때부터 열심히 하면 돼'라고 하셨다. 마치 이때를 위해서 음악적 자산을 준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원래 한국무용과 판소리를 하긴 했지만 제대로 공부해놔야겠다는 마음에 선생님들을 모시고 공부를 시작한 게 1년 전이었다. 희한하게 이번(작품)에 그게 다 쓰인 거다. 첫 미팅 때부터 돌맞아 죽는 엔딩을 할 때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를 상의했다. 제가 갖고 있는 걸 보여주는 자리이지, 학예회 발표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정말 그 씬에 최적화된 노래와 무용을 적재적소에 녹이기 위해 애썼다."

◇ 선물처럼 남는 부분과 아쉬운 점

요부 아닌 탁월한 예술인, 이하늬가 그린 새로운 '장녹수'
이하늬에게 장녹수는 그야말로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몰입한 역할이었다. 그는 "어떤 부분은 굉장히 만족하지만 어떤 부분은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하는 게 있다. 반반의 마음"이라고 밝혔다.

직접 꼽은 만족스러운 장면은 승무를 출 때였다. 앞으로 다시 이런 기회가 온다고 해도 '역적'에서만큼은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황진영 작가가 '뭘 해 주세요'라는 구체적인 요청을 하지 않아 오히려 더 치열하게 준비했다고.

"예인으로서의 처음 연산과 통하는 장면에서 살풀이와 승무 중 어떤 걸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진짜 오래 아껴두었던 승무를 '역적'에서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이 씬에 잘 녹아들어갔다. 밤새는 와중에도 그 씬만 5시간을 찍었다. 진만 감독님의 열정과 디테일한 부분을 일일이 챙기려는 완벽함에 너무 놀랐고 감사했다. 5~6일 안에 찍고 편집하고 송출해야 하는 일정이 만만치 않은데, 결국 팀웍이 해낸 씬이 아닐까 싶다."

이하늬는 제작진의 배려가 돋보였던 또 다른 일화도 공개했다. 방송 3사가 지켜야 하는 송출 기준 때문에 장구춤 씬의 현장감이 떨어져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김 감독이 끝까지 송출을 높여서 원래 사운드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송출 기준을 넘기면 많은 벌금을 내야 하는데도 끝까지 양보 못한다고 해 소리가 납작하게 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고. 이하늬는 "퀄리티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신다. 이런 모습에 제게는 조금 감동이었다"고 전했다.

◇ 결정적인 두 남자, 홍길동과 연산… 누굴 사랑했을까

역사 속 인물 장녹수는 조선의 10대 왕 연산군과 '짝꿍'처럼 붙어다니는 존재지만, 드라마 속에서 녹수는 나라를 구하는 장사 홍길동과 먼저 연을 시작하는 인물이다. 이후에 궁에 들어가면서 연산군의 여자가 된다. 이하늬는 홍길동과 연산군 모두 녹수의 빼어난 '재능'을 알아본 사람들이었다고 기억했다. 또한 두 사람 모두를 사랑했다고 전했다.

"길동하고 만났을 때는 녹수는 사랑을 알지만 사랑을 부정하고 싶었던 여자였던 것 같다. 길동도 방울장수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하지만 녹수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처절한 경험이 많았지 않나. 녹수가 그동안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속마음을 말하며 자기 아픔을 토해내는 장면이 있다. 녹수가 희롱당할 뻔한 순간에 자리에서 빠져나오며 '기생이 춤추고 노래하는 거지, 예인은 무슨' 하고 자조적으로 얘기하는데, 길동은 '그런 노래와 춤을 하면서 자기가 예인인 것도 몰랐나' 하고 책망한다. 녹수는 자신의 그런 면을 봐 준 길동이 고맙기도 하면서,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과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나중에는 그런 코드가 연산에게도 간다. 연산을 보는 녹수의 감정은 굉장히 복잡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남자라고 여기면서도 이 남자가 갖고 있는 예인의 모습을 사랑했던 것 같다. 연산과 궁에 있을 때 길동이 잡혀들어오는데 녹수가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건 녹수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연산 곁에는 단지 '출세' 때문에만 있는가. 그렇진 않았다. 지금까지는 이 남자가 나를 지켰는데 나중에는 내가 이 남자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민일 수도 모성애일 수도 있다."

(인터뷰 ② 완벽해보이는 이하늬, 그가 밝힌 장녹수와의 '공통점')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yesonyou@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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