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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시 법’ 개정, 원칙 위에 스타가 있다?

2017-04-26 07:54

렉시톰슨.사진=마니아리포트DB
렉시톰슨.사진=마니아리포트DB
[마니아리포트 이은경 기자] 한 달 여 동안 논란이 됐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ANA인스퍼레이션의 ‘렉시 톰슨 벌타 사건’에 대해 영국 R&A(왕립골프협회)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렉시 법’을 발 빠르게 만들어 발표했다.

지난 25일(한국시간) USGA는 “앞으로 시청자 제보를 토대로 선수에게 벌타를 주거나 이미 스코어카드를 제출한 플레이에 대한 사후 벌타 소급적용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와 같은 새 규정은 2019년 1월부터 적용 예정인 골프 규정 대개정 시행까지 기다리지 않고 발표와 동시에 당장 시행된다.

톰슨은 지난 달 말 열린 메이저 대회 ANA인스퍼레이션에서 4라운드 선두를 달리며 우승을 눈앞에 뒀다가 전날 3라운드에서 공을 마크 위치에 정확히 놓지 않았다는 게 시청자 제보로 밝혀지면서 4라운드 도중 4벌타를 소급 적용 받았다. 톰슨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벌타를 중요한 순간에 받게 되면서 결국 우승을 놓치는 결과를 낳았다.

USGA의 골프 규정 시니어 디렉터 토머스 페이젤은 25일 미국 골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렉시 법은 특정 사건 때문에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다. 우리는 현대 골프에 맞는 규정으로 개정하기 위해 더 노력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렉시 톰슨의 벌타 사건이 아니었다면 ‘렉시 법’이 이처럼 빨리 만들어지고 적용 됐을까 하는 부분에 있어서 의문이 남는다. 미국의 여론은 '렉시 톰슨 벌타 사건'에 대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과연 전세계 골프팬들이 모두 같은 생각이었는지도 의문이다.

한국 팬들은 포털사이트 혹은 SNS를 통해 “중계 화면에 잡힌 장면을 보면 명백한 룰 위반이다. 벌타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만일 미국 스타가 아닌 다른 나라 선수가 똑 같은 경우를 당했다면 미국 내에서 이 정도로 논란이 됐겠느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다.
이달 초 국내 대회에 참가했던 LPGA투어 프로 김효주(롯데) 역시 “어떤 벌을 받았느냐에 대해 말이 많은 것이지, 규정 위반에 대해서는 벌타를 받는 게 맞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다.

반면 미국 팬들은 톰슨의 벌타 당시 “LPGA가 한심하다” “다시는 안 본다”는 등의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팬들의 반응 이상으로 미국 골프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한목소리로 톰슨의 벌타를 비판했다.

타이거 우즈는 톰슨의 벌타 결정 직후 “TV를 보던 시청자가 경기위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트위터에 썼고, PGA의 스마일리 카우프먼은 “소파에서 치토스 먹던 시청자가 대회 결과에 개입할 수는 없다”고 감정적인 글을 SNS에 남겼다.

남자골프 세계랭킹 1위 더스틴 존슨은 “다른 종목엔 이런 일이 없는데, 왜 골프 선수만 당해야 하나”라고 항변했고, 지미 워커는 “중계 화면에 노출이 많이 되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시청자의 감시를 더 받아서 불리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렉시 톰슨 벌타 논란’ 이후 미국 언론들은 스타 플레이어들의 이러한 반대 목소리를 자주 전했고, 미국 골프팬들의 여론을 들끓게 하는데 한몫 했다. 또한 이번 ‘렉시 법’이 발표되자 미국 매체들이 쓴 기사의 톤은 “USGA의 발 빠른 규정 적용이 박수를 받고 있다. 앞으로 골프 경기 운영과 흥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평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앞으로도 중계 카메라에는 잡혔지만, 현장에서 경기위원이나 동반 플레이어들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여러 가지 규정 위반 플레이가 나올 가능성이 존재한다.
어쩌면 그때는 경기위원 외에 별도의 심판이 존재하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자신이 감시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골프의 원칙이 ‘현대 골프’라는 이름으로 변질됐다는 논란이 나올 수 있다.

이번 룰 개정의 승자는 골프 팬도, 중계사도 아닌 '교묘하게 규정 위반을 하면서 좋은 성적을 내곤 했던 스타 플레이어들'이 아닐까. ‘렉시 법’이 이례적으로 발 빠르게 발표되고 적용됐다는 사실은 ‘현대 골프’가 골프의 순수한 원칙 대신 스타 플레이어들(특히 미국의 스타 플레이어들)의 목소리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남겼다. /kyo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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