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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여자의 일생'이라면 사양하겠습니다

[노컷 리뷰] 남편과 아들에게 상처만 받는 한 여인의 일대기

2017-03-28 06:00

영화'여자의일생'스틸컷.주인공잔느(사진=그린나래미디어제공)
영화'여자의일생'스틸컷.주인공잔느(사진=그린나래미디어제공)
"[여자의 일생]은 [레 미제라블] 이후 가장 위대한 소설이다"

영화 '여자의 일생'(감독 스테판 브리제)는 기 드 모파상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하고 있다. 세계적 문학 거장 톨스토이가 원작을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치켜세웠고, 뉴욕타임스는 이 영화를 "어떤 비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평단은 호평을 내놨지만, 영화를 볼 때부터 막이 오를 때까지 끝내 동의할 수 없었다.

'여자의 일생'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귀족 잔느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다. 가난한 자작 줄리앙을 만나 뜨거운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는 것에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로에게 서로밖에 보이지 않는 열렬한 연애 당시 나눈 말들은 그 무엇보다 달콤하다. 사랑의 맹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원의 약속'도 물론 등장한다.

하지만 잔느가 극중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찰나다. 연애 시절 불타오르던 사랑은 잠시뿐이었다. 줄리앙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갈 때도 잔느를 데리고 가지 않으며, 집에 혼자 남겨진 잔느가 추위 때문에 장작을 태우려고 하자 이제 낭비는 그만하라며 훈계하는 무뚝뚝한 남편이 되어 있었다.

더구나 줄리앙은 잔느와 같은 젖을 먹고 자란, 친구 같이 가깝게 지내는 하녀 로잘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아이를 임신시키기까지 한다.

줄리앙은 로잘리의 실토가 있고 난 후에야 잔느와 가족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면서도 '잔느의 용서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잔느는 외도를 알게 된 충격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섣불리 '용서'를 구하는 남편을 인정해야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일까. 로잘리의 임신 소식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아 잔느 역시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들 폴을 낳는다.

잔느는 전에 살던 곳을 떠나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는데, 이때 한 부부와 친하게 지낸다. 어릴 적 로잘리와 그랬던 것처럼 가까워진 이웃집 부인은 남편 줄리앙의 새로운 외도 상대가 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잔느는 이를 목격하고 만다.

고통을 주는 존재는 남편만이 아니다. 영화 초중반까지 줄리앙이 답답함과 한심함의 대명사 역할을 해 왔다면, 더 수위 높은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은 아들 폴이다.

폴은 엄격한 규율을 갖춘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엄마와 함께 있겠다고 떼를 쓰고, 교실로 들여보내려는 신부를 폭행한다.

나이를 조금 더 먹고 나서는 사모하는 여인이 생겼다는 이유로 큰돈을 겁 없이 쓰는가 하면, 매번 하던 일에 실패해 급전이 필요할 때에만 엄마에게 편지를 보낸다. 얼굴도 제대로 비추지 않으면서 편지로 구걸하는 것이 조금은 겸연쩍었는지 편지 끝에는 꼭 '사랑'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 아버지 줄리앙과의 차이점이랄까.

젊은 시절에는 남편이 '외도'로, 이후에는 아들이 '반항'과 '낭비벽'으로 속을 썩여 잔느는 점점 판단력이 흐려진다. 폴의 거듭된 돈 요구와 잘못 선 보증으로, 한때 수십 개의 농장을 보유했던 잔느는 수입보다 갚아야 할 돈이 많은 상황으로 전락한다.

그나마 곁을 지키는 것은 대가 없이 시중을 들고 싶다며 돌아온 로잘리뿐인데도, 잔느는 순수했던 시절 폴의 옛 모습만을 떠올리며 아들에게 줄 돈을 네가 훔친 것 아니냐며 억지를 부린다.

로잘리는 또 다시 돈을 달라고 편지를 보낸 폴이 정말 편지에 쓴 대로 살고 있는지 확인하겠다며 파리로 가고, 폴의 아이를 데리고 다시 돌아온다. 잔느는 마치 이제까지의 일은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평온하게 잠든 아이를 보고 미소짓는다. 그때 나오는 대사가 "인생은 생각만큼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아요"다.

지금보다 200년도 더 전인 1800년대를 배경으로 하기에, 단순히 요즘의 잣대를 댈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해도, '여자의 일생'은 잘못된 결혼생활로 한 여성이 어느 정도까지 괴로울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사실이다.

모파상은 "삶에서 유일하게 좋은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랑"이라는 멋진 말을 하고도 정작 그 사랑의 아름다움과 온화함을 잔느에게는 아주 잠깐동안만 허락했다. 심지어 직면한 문제를 차분히 풀어나가는 능력도, 최소한의 판단을 유지할 수 있는 '더 망가지지 않는 상황'도 주지 않았다.

결국 손에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 '사랑'을 맹목적으로 믿는 철모르는 여성에게는 상처와 불행이 뒤따라 온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밑바닥까지 치닫은 잔느에게 인생이 "생각만큼 불행하지 않다"는 대사는 기만이 아닌가.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위한 클래식 멜로'를 표방한 '여자의 일생'은 그다지 따뜻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은 '한 여성의 시련 가득한 일대기'다. 잔느의 삶이 곧 '여자의 일생'이라면 단호히 사양하겠다.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yesonyou@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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