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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썰] 전철 타고 골프장 가기

2016-12-08 11:53

올해열린한KLPGA투어대회에서박성현을보기위해구름갤러리들이따라다니는모습.마니아리포트자료사진.
올해열린한KLPGA투어대회에서박성현을보기위해구름갤러리들이따라다니는모습.마니아리포트자료사진.
먼저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운전면허증을 갖고 있기는 하나 운전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걸 타고 다니는 편이다.

스포츠 기자로서 딱히 불편한 일은 없었다. 지방 야구장에 갈 때는 기차 타고 해당 도시에 내려서 택시를 탔고(광주 혹은 부산의 경우 ‘야구장에 가자’고 말하는 순간부터 도착할 때까지 야구팀에 관한 택시 기사님의 격정 토로를 들어야 하는 게 살짝 불편했을 뿐), 축구장도 농구장도 모두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갔다.
전주월드컵경기장의 경우 전주 시내에서 가는 것보다 고속도로 IC에서 더 가까운데, 고속버스 기사님께 “월드컵 경기장 앞에서 잠깐 세워주세요”라고 미리 부탁드리면 그 앞에 세워 주셨다.
축구 A매치 같은 큰 경기가 열릴 때는 오히려 자동차를 운전해서 가면 몇 만 관중이 몰려든 주차장까지 시간이 한참 걸려 더 난감했다. 전철 타고 가는 게 속 편했다.

하지만 그 대중교통의 길 끝에 거대한 벽을 하나 만났는데, 바로 골프장이다.

골프장에도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대회 주최측이 역 근처, 혹은 시내의 특정 장소에서 골프장까지 가는 갤러리 셔틀을 운행할 때다.
전철 역에서 내려서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면, 모자에 ‘남달라’ 배지를 붙이고 있는 팬들, 혹은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접이식 의자를 들고 있는 중장년 골프팬들과 함께 골프장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갤러리 셔틀을 운행하는 대회는 많지 않다.

올해 KLPGA투어 대회 중 중국, 태국 대회 등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열린 대회는 총 28개(LPGA대회인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제외)였다. 이 중 대중교통과 연계된 갤러리 셔틀을 운행한 대회는 10개 밖에 되지 않는다. 대중교통으로는 갈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이론적으로 도보로 갈 수는 있다)


지난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퀸즈컵에서 만난 대회 관계자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일본은 모든 대회가 전철 역에서 대회장까지 갤러리 셔틀을 운행한다. 대회 홈페이지에는 첫 페이지부터 셔틀버스 안내문이 나온다”고 했다.

이 지점에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골프는 과연 대한민국에서 대중 스포츠일까.

올해KLPGA투어대회에참가한전인지뒤에서수많은갤러리들이환호를보내고있다.마니아리포트자료사진.
올해KLPGA투어대회에참가한전인지뒤에서수많은갤러리들이환호를보내고있다.마니아리포트자료사진.

대중 스포츠라면, 최소한 누구나 그 경기를 보러 경기장에 쉽게 갈 수 있는 게 맞다. 하지만 대중교통과 연계된 셔틀버스가 없는 대회는 그렇지 않다.
면허증이 없는 중고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야구장 가듯 골프장에 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더 나아가 경제적으로 자가용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현실적으로 골프장 갈 생각은 아예 안 하는 게 낫다. 건강상의 이유로 운전을 못하는 사람, 여러가지 이유로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떨까.

골프를 직접 치려면 장비를 살 돈과 연습하고 라운드 할 시간이 필요하다.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히 골프 경기를 보는 건 어떤가. 그조차 이렇게 진입장벽이 있다면 골프를 대중 스포츠라고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셔틀버스 현황을 보면서 드는 또 한 가지 의문. 과연 한국 프로골프투어 대회를 여는 대부분의 스폰서사들은 골프장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길 진정으로 바라는 걸까.

대중교통 연계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는 건, 대중교통으로 올 거면 오지 말라는 뜻이나 다름 없다. ‘굳이 대중교통으로 오는 사람들까지 받을 생각은 없다’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동차를 운전해서 대회를 보러 간 갤러리들이 최상의 서비스를 받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 골프대회에서는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엔 일반 손님을 받는다. 일부 코스에서는 대회가 진행되고, 나머지 코스에서는 부킹을 하고 온 아마추어 골퍼들이 라운드를 하는 게 다반사다. 그래서 주차장의 좋은 자리는 돈 내고 골프 치러 온 손님들에게 우선 배정된다.

갤러리들은 대회장과 다소 떨어진 입구 쪽 주차장 자리를 배정받거나 혹은 골프장 근처의 공지 같은 데 만들어진 갤러리 주차장에 차를 세워야 한다. 대다수 국내 골프 대회에서 ‘셔틀버스’는 갤러리 주차장에서 대회장까지 운영하는 버스를 말한다.

의아한 점은, 골프장의 주차공간이 협소한 경우에도 셔틀버스를 운영하며 대중교통 이용을 적극 홍보하지 않는 대회도 참 많다는 것이다.

올해하이트진로챔피언십을찾은한어린이팬.한국은미국,일본에비해가족단위로골프장을찾는갤러리를보기힘든게사실이다.마니아리포트자료사진.
올해하이트진로챔피언십을찾은한어린이팬.한국은미국,일본에비해가족단위로골프장을찾는갤러리를보기힘든게사실이다.마니아리포트자료사진.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국내 골프대회는 스폰서사가 폼 나게 돋보이고, 스폰서사 VIP들이 프로암에서 기분 좋게 골프 치고, 마지막 날 좋은 자리에서 우승 장면을 보는 걸 최우선 순위에 놓는 듯하다. 여기에 너무나 신경 쓰느라 팬들과 선수들의 편의가 희생되기도 한다. 대회 흥행은 오롯이 스타 선수가 책임지고, 스타를 보려면 팬들이 차 갖고 알아서 와야 한다는 게 지금 한국 프로골프의 현실이다.

올해 KLPGA투어는 지난해에 비해 대회 수가 늘었는데도 불구하고 관중 수는 줄었다. 정작 프로골프 관계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명의 관중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눈물 겨운 노력을 하는 여타 프로스포츠 종목의 구단 프런트들을 떠올려 보면, 과연 한국 프로골프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지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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