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골프 칼럼
[김세영의 마니아썰]쭈타누깐의 미소와 2번 아이언
   
▲ 에리야 쭈타누깐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2번 아이언과 미소다. 그는 이 두 가지를 앞세워 여자 골프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려면 역시 남달라야 한다는 걸 그를 통해 다시 깨닫는다. 사진=LPGA 투어 홈페이지

험악한 인상의 배우가 악역을 맡을 때보다 매끈한 외모를 가진 이가 무표정 또는 웃는 얼굴로 악행을 저지를 때가 더욱 섬뜩하다. 영화 ‘도망자’에서 보여준 하정우의 연기가 그랬다.

요즘 골프계에서는 태국의 에리야 쭈타누깐이 단연 화제다. 그는 지난 5월 생애 첫 우승을 달성하면서 내리 3연승을 하더니 지난 주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 정상에 올랐다. 첫 우승과 더불어 3연승을 한 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66년 역사상 처음이다. 그는 태국 남녀 통틀어 최초의 메이저 우승이기도 하다. 그래서 ‘태국의 박세리’로 불린다. 이번 리우 올림픽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도 떠올랐다.

그는 샷을 하기 전 미소를 짓는 게 특징이다. 결정적인 퍼팅을 앞두고 입가를 말아 올리며 웃는다. 긴장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거지만 상대에게는 섬뜩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번 브리티시여자오픈 최종일 파3 17번 홀. 그가 버디 퍼트를 할 때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역시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이 버디 덕에 그는 이미림과의 간격을 2타 차로 벌리며 사실상 우승을 확정했다. 그의 미소는 도살자가 마지막 한 방을 내려치기 바로 직전, 만화나 영화 속에서 보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배트맨’의 악당 조커가 오버랩 되기도 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퍼팅을 하던 박인비가 ‘사일런트 어새신’(침묵의 암살자)으로 불린다면 쭈타누깐은 ‘스마일링 어새신’(미소 짓는 암살자)이다. 감정이 없는 것보다 오히려 처한 상황과 반대의 표정이 경쟁자들을 소름 돋게 만든다.

하지만 화면으로 비치는 것과 달리 그는 연약하다. 물론 덩치가 아니라 마음이다. 쭈타누깐의 전 캐디는 지난달 ESPN과의 인터뷰에서 “가끔 그가 아직 스무 살이라는 사실을 잊기 쉬운데 솔직히 그는 열다섯 소녀 같다. 코스에서는 농담을 좋아하고 웃고 떠드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코스에서는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많았다. 올 시즌 초까지만 하더라도 압박감이 심한 상황에서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졌다.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는 마지막 3개 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하며 우승컵을 리디아 고에게 헌납했다. 3년 전 초청 선수로 출전한 혼다 타일랜드 때는 2타 앞서다 18번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범한 적도 있다. 당시 우승자는 박인비였다.

이런 절박함 속에서 그가 찾은 게 미소다. 그의 코치인 피아 닐슨과 린 메리엇은 “그는 심리적 압박을 받으면 플레이 속도가 빨리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늦추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찾다가 미소를 권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쭈타누깐을 더욱 독특하게 만드는 건 2번 아이언이다. 그에게 2번 아이언은 ‘전설 속의 보검’이다. 이제는 아마추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프로 무대에서도 거의 사라진 2번 아이언이 그를 통해 부활했다. 그는 “2번 아이언이 정말 편하다. 드로와 페이드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현역으로 활동하는 여자 골퍼 중 2번 아이언을 사용할 줄 아는 골퍼는 쭈타누깐 외에 렉시 톰프슨 정도만 꼽힌다. 다른 여자 선수들의 백에서는 2번 아이언은커녕 4번 아이언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 자리는 하이브리드가 대신하고 있다.

2번 아이언은 사실 남자 프로골퍼들도 사용을 꺼려한다. 국내 팬들에게 2번 아이언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은 꼭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황량한 코스에서 펼쳐진 디 오픈에서 2번 아이언으로 ‘스팅어 샷’을 날리며 클라레 저그를 품에 안았다.

시대에 역행하는 듯한 2번 아이언, 그리고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미소의 결합. 쭈타누깐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그는 이 두 가지를 앞세워 불과 3개월 만에 여자골프의 흐름을 바꿨다. 게임 체인저까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전통적인 여자 골퍼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즈처럼 한 시대를 풍미할지는 아직 더 두고 봐야겠지만, 경쟁에서 이기려면 역시 남달라야 한다는 걸 그를 다시 깨닫는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리포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세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동영상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