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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의 마니아썰]박성현의 입스와 ‘루케테’

2016-05-05 08:20

▲박성현은드라이버입스를치료하는과정에서장타자가됐다.그리고불과1년만에자신의시대를활짝열어젖혔다.
▲박성현은드라이버입스를치료하는과정에서장타자가됐다.그리고불과1년만에자신의시대를활짝열어젖혔다.
요즘 가장 ‘핫’한 플레이어는 박성현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올 시즌 이미 3승을 거뒀다.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대로 전인지가 빠진 자리를 곧바로 꿰차며 ‘대세’로 자리 잡았다.

박성현의 트레이드마크는 장타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70야드를 쉽게 넘긴다. 하지만 박성현이 처음부터 장타자였던 건 아니다. 공교롭게도 입스(샷을 하기 전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나는 각종 불안한 증세)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장타자로 탈바꿈했다.

9세 때 처음 골프채를 잡은 그는 지금까지 두 번의 드라이버 입스를 겪었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입스는 1년 정도 이어지다 어느 순간 사라졌다. 드라이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자 실력도 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이어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0년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다시 입스가 찾아왔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 선발전에 탈락했다. 티 박스에 올라서면 OB(아웃오브바운스)부터 걱정해야 했다. 두 번째 찾아온 입스는 치유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박성현은 “도대체 스윙 타이밍을 잡을 수 없던 시기였다”고 했다.

OB를 걱정해 살살 치면 더욱 샷이 되지 않았다. ‘루키’이던 2014년 한화금융 클래식 3라운드 4번홀(파5)에서는 OB 3방을 내면서 12타를 쳤다. 그날 스코어는 91타였다. 그 해 24개 대회에 참가해 10차례나 컷을 당했다. 드라이버 샷은 소위 ‘난을 치며’ 중구난방이기 일쑤였다.

집안 형편도 넉넉지 않아 멘탈 코치를 찾을 엄두도 못 냈다. 그는 샷은 어떻든 더욱 세게 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입스는 심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정면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거다. 한 달에 한 번 머리 염색을 하며 스트레스도 날렸다. 샛노란 색이어서 코스에서 튀었지만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진 않았다.

박성현은 또한 샷이 좋았다고 느꼈던 중학교 시절의 스윙 영상을 보면서 문제점을 찾아냈고, 결국 입스를 극복했다. 그렇게 보낸 3년 동안 덤으로 비거리도 월등히 늘었다. 지금도 박성현은 잠자리에 들기 전이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으로 스윙 영상을 찾아본다. 입스를 치유하면서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박성현의손목에는'루케테'라는문신이새겨져있다.'밝게빛나라'라는뜻이다.이문구를보며박성현은힘든시기를참고,벼텼다.
▲박성현의손목에는'루케테'라는문신이새겨져있다.'밝게빛나라'라는뜻이다.이문구를보며박성현은힘든시기를참고,벼텼다.


박성현은 입스에서 벗어났지만 곧바로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여전히 한 번씩 OB가 불쑥불쑥 찾아왔다. 지난해 6월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 최종일 당시 마지막 홀에서 1m 거리의 버디 퍼트를 놓치며 연장전에 끌려갔고, 결국 눈물을 훔쳤지만 사실 그 전에 OB를 내며 타수를 까먹은 전력이 있었다.

이후 드라이버가 똑바로 잡히기 시작하자 박성현은 훨훨 날았다. 연장전의 아픔을 뒤로 하고 2주 뒤 한국여자오픈에서 정규 투어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승을 더 했다. 올해도 4개 대회에 출전해서 우승컵 3개를 수집했다.

자신에 대한 믿음 하나로 오랜 기간의 입스를 극복하고 불과 1년 만에 전성기를 활짝 열어젖힌 박성현은 최근에는 어프로치 능력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실전을 통해 연습을 하는 스타일이다. “긴장된 상태에서 샷을 해 봐야 진정한 내 것이 된다”는 게 이유다. 박성현의 어머니는 “연습을 실전에서 하니 속이 터진다”고 한다.

박성현은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다양한 공략 루트 중 자신이 최선이라고 믿는,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길을 가보려 한다. 남자 프로 골퍼들의 고난도 기술을 보고 실전에서 익히는 중이다. 당장은 조금 손해를 볼 수는 있어도 그걸 마스터하는 순간 자신의 실력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굳게 믿어서다. 입스를 극복하는 과정도 그랬다.

박성현의 손목에는 ‘Lucete’(루케테)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라틴어로 ‘밝게 빛나라’라는 뜻이다. 아직 투어 우승이 없던 2년 전쯤 새겼다. 언젠가는 밝게 빛날 것이라는 믿음이 그가 버틴 힘이었고, 이제 현실로 만들었다.

국내외 경제와 고용 관련 뉴스는 우울한 소식뿐이다. 앞으로가 더 힘들 거라는 전망이다. 수많은 청춘들은 암담한 현실에 좌절하고, 중년은 그들대로 삶의 무게가 버겁다. 힘들어도 버티면서 준비하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것임을 믿자. 18홀 라운드도 그렇다. ‘루케테!’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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